북미 최후의 야히족 인디언, 이시
(2006. 1. 16 최종 수정)
살기 위해 백인을 피해 숨어살던 인디언
조용한 센터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실명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 - 야히족 출신의 캘리포니아 토착 미국인으로서
낯선이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는 것은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 그래서 그는 그의 부족의 말로 "이시(Ishi)"로 알려졌다. 그는 거의
40년 동안을 야히족들이 자신들의 종족을 거의 쓸어버린 백인들을 피하기 위해 숨어지냈던 라센산의 구릉지대에서 고립된채 보냈다.
그를 제외한 종족들은 모두 죽었고, 이시 자신이 한 종족이었을 때, 그는 자신의 조심스럽게 숨겨진 세상에서 걸어나와서 캘리포니아 오로빌로 왔다. 1911년 8월 29일 도살장 근처에서 그는 발견되었다. 50년 전 야나족과 야히족을 학살한 사람들과는 달리 마을주민들은 이 공포에 질린 남자를 걱정해주었고 그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듣고나선 파이를 구워주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두 문화인류학자 알프레드 크뢰버와 T.T. 워터맨은 이시를 오로빌 감옥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오게 해주었고 그곳에서 박물관에서 살게 되었다. 우호적이고 호기심이 강한 이시는 크뢰버와 워터맨에게 자신의 언어, 문화, 관습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그가 알아왔던 것과는 상상할 수도 없이 다른 세계에서 사는 법을 배웠다. 그는 1916년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이시의 이야기는 그의 생의 마지막 5년 동안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1961년
알프레드 크뢰버의 64살된 부인 데오도라 크뢰버가 저 유명한 "두 세계에서의 이시: 북미에서의 마지막 야생 인디언의 전기
(Ishi in Two Worlds: A Biography of the Last Wild
Indian in North America)"를 쓸 때까지는 기억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저자의 놀라움과 기쁨 속에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 그 책은 오레곤 독서클럽(The Oregonian Book Club)의 6월의
선정도서이다.
이시에 대한 연구자료
Ishi와 Yahi Indian에 관한 귀중한 기록과 손으로 쓴 자료들을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분교의 '중요기록과 특별수집학과'(Department of Archives & Special Collections at UCSF)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분교의 Bancroft 도서관(Bancroft Library at UC Berkeley)에서 볼 수 있다. Ishi에 의해 만들어진 Yahi족의 공예품과 도구들을 UC Berkeley의 Proebe A. Hearst 문화인류학 박물관(Phoebe A. Hearst Museum of Anthropology)에서 연구할 수 있다.
좌로부터 Sam Batwi (북/중부 Yana Indian), A.L. Kroeber 박사 (University of California
문화인류학자), 그리고 Ishi (Yahi족 혹은 남부 Yana Indian), 1911.
사진출처 : 캘리포니아 버클리 분교의 Phoebe Hearst 문화인류학 박물관
마지막 야히족 인디언 이시의 발견
1911년, 한 인디언이 북캘리포니아에서 길을 잃었다. 영어는 한 마디도 못했고, 고전적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사람은, 그가 헛간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곤 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진귀한 동물마냥 그를 젊은 문화인류학자 알프레드 크뢰버가 연구할 수 있게 샌프란시스코로 보냈다. 그는 이시(Ishi)라는 것과 야히족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상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는 꽤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그는 굶주리고 거의 헐벗은 채 Oroville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버클리의 유명한 문화인류학자 알프레드 크뢰버는 이시를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공원 위에 있는 박물관에서 살게 했다. 크뢰버는 신문에 이 "오염되지 않고 문명으로부터 격리된" 인디언은 문화인류학에 있어 전례없는 발견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원시적인 사람들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수천명의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이 이 작은 야히족의 마지막 생존자가 어떻게 돌화살촉을 만드는지, 또는 날씨가 좋으면 작은 인디언집을 짓고 뒤에 있는 작은 언덕에서 고함을 지르는 것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의 5년을 살았다. 그는 1915년 말에 병에 걸렸고 1916년 3월 25일 그의 박물관집 옆에 있는 병원에서 숨졌다.
신문에서 말했듯이, 이시의 죽음은 일 개인이 숨진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 종족이 끝난 것이었다. 인류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끝난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誌는 "이시, 마지막 석기시대 인디언이 죽다"라고 보도했다.
초기 미국인들이 서부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인디언 정복은 플리머스 락(Plymouth Rock; 지명)에서부터 대평원(Great Plains)의 마지막 '적대적인' 부족의 패배, 그리고 19세기 말 멕시코 북부의 제로니모(Geronimo)의 항복에 이르기까지 300년 이상이 걸렸다. 캘리포니아 인디언에 대한 정벌은 북미지역의 탈취에 있어 신속하고 흉폭한 마지막 章이었다. 1849년 골드러쉬 직전까지 15만명 정도의 인디언이 아직도 생존해 있었다. 이 인디언들 - Hupa, Miwok, Karok, Ohlone, Yuki 그리고 Chumash족 - 은 이 방대하고 다양한 땅 위에 500여개의 무리를 이루어 산재해 있었다. 이들중 어느 종족도 남서부의 Navajo족이나 대평원의 Lakota족처럼 크지 않았다. 알프레드 크뢰버는 캘리포니아의 토착사회를 '작은 부족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 각각의 부족은 그 자신만의 고유한 영토를 가지고 신화와 관습을 세대를 통해 전승해 오고 있었다. 거의 90여개의 별개의 언어가 캘리포니아 토착민들에 의해 말해지고 있었고, 사투리까지 감안한다면 더 많았다. 인디언은 오늘날의 산호세에서 싼타 크루즈까지 딱 20마일 거리를 걸어가면 영어가 Amaric 혹은 Urdu에서 나온 것처럼 자기네 고유언어와 서로 다른 언어를 만났다.
그러나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겨우 2만여명의 캘리포니아 원주민들이 남았다. 비극적인 단 몇 십년 동안에 4분의 3 이상의 토착민들이 질병으로 쓰러지거나 이주자들에게 사냥을 당해 죽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고의적으로 질병을 퍼뜨리기도 했다. 면역성이 없는 새로운 질병에 많은 인디언들이 쓰러져 갔다.
이시의 성장과 삶
마지막 야히족 인디언 이시는 캘리포니아 토착인들에게 혼란과 공포의 이 시기에 성장했다. 거의 석기시대의 사람으로서 그는 아마 1860년대의 어느 땐가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에 전통적인 야히족의 구릉지대 바로 아래였던 싸크라멘토 계곡은 대평원을 가로질러 약속의 땅 캘리포니아를 자신들의 것으로 하려고 이주해 온 개척농장들로 가득찼었다. 야히족과 이주민들 사이에 폭력적인 충돌이 생겼으나 백인들이 숫적으로 우세했고, 1871년에 30명의 인디언을 킹슬리 동굴이라 불리는 곳에서 학살한 것으로 그 극에 달하는 공격을 했었다.
이시가 출생할 때쯤에, 살아남은 야히족들은 붙잡히지 않으려고 숨었다. 끝에 가서, 반 세기 후엔, 겨우 4명만이 남았다. 이시와 동료들의 주 은신처는 그들이 Wowunupo Mu Tetna 혹은 그리즐리 곰의 은신처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농장에서 단지 몇 구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Deer Creek의 덩굴이 무성한 계곡 절벽 아래에 숨겨져 있었다.
이시의 황무지 생활은 크뢰버와 그 동료들이 세상사람들에게 믿도록 원하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원시적이거나 오염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기아를 면하기 위해 이시와 다른 사람들은 콩통조림이나 보리, 과자 부스러기 등을 근처의 통나무집에서 훔치거나 때때로 양을 밀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둔하고 있는 야히족들은 또한 그들의 캘리포니아 토착민들의 고유한 방식들을 대부분 지키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냇가에서 작살로 연어를 잡았고 도토리죽을 잘짜여진 바구니에 끓이기도 했고 코요테, 들고양이, 너구리의 가죽으로 바느질을 해 담요를 만들기도 했다. 선배들로부터 이시는 많은 야히족들의 노래와 자기 부족의 태생신화를 배웠다. 대평원에서의 대전쟁(Plains Wars)이 끝난 20년 후, 이시는 백인사회의 궤도 밖에 있는 미대륙 전체에서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인디언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알프레드 크뢰버는 말한 적이 있다.
이시의 사후 수십년이 지나서는, 캘리포니아 어디에도 인디언은 없다고 간주되었다. 지금까지도, 캘리포니아 인디언들이 카드놀이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 전역에 107개의 작은 인디언 보호구역들이 있고, 또는, 놀랍게도, 대략 50개의 서로 다른 고유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지금까지도 볼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이시는 마지막 야히족이었다. 그는 마지막 캘리포니아 인디언이 아니었다.
미국 인디언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주장
그러나 20세기의 대부분 기간동안에도 캘리포니아의 원주민(first peoples)들중 생존자들이 천하고 잊혀진 채 내버려져 있었다. 그들은 외따로 떨어진 황야 뿐만 아니라 클라매스 강 분지의 평범한 작은 부락,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의 풀덩굴이 굴러다니는 곳, 그리고 그와 유사한 길에서 떨어진 곳에 숨겨져 있었다. 겨우 60년대와 70년대에서야 인디언들은 전국에 걸쳐 어디에서든 자신들의 곤궁한 것에 주의를 가져 줄 것을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흑표범단(Black Panthers, 미국의 극좌익 흑인과격파단체), Chicano Brown Berets(역자 註: 멕시코계의 갈색 베레모를 쓴 단체인듯함), 그리고 다른 인종 그룹들의 영향을 받아서 젊은 인디언 투쟁가들 그룹이 인디언 보호구역의 빈곤, 깨어진 협정, 그리고 자기 부족들이 겪고 있는 불공정함과 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주인이다. 임대기간은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뭉쳤다"
라고 이 기간동안에 형성된 새로운 인디언 조직들중 가장 잘 알려진 A.I.M(American Indian Movement, 美인디언 운동)의 지도자인 클라이드 벨코트는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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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때 어느 책에서 - 잡지에선지 단행본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아마 어느 월간지가 아니었나 싶다 - 읽어본 "북미 최후의 인디언 이시".
지금 찾아보니 크뢰버 부인이 쓴 "북미대륙 최후의 야생 인디언"이었던 것을 나는 북미 최후의 인디언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간,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이시는 문명세계로 와선, 크뢰버 박사의 도움으로 현대생활에 익숙해지려 많이 노력을 했지만, 그는 영어단어를 외우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일례로, 그는 'Hello' 라는 말을 정확히 발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알루' 라고 발을을 했다고 한다. 그가 아는 영어단어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긴 황무지에서 살던 인디언들은 그들의 정신세계는 깊고 넓었지만, 극히 발달된 물질문명을 이루고 사는 현대세계에서 쓰듯이 그런 많은 단어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 종족이 모두 살륙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백인들을 피해 평생 숨어살던 사람이니까, 세월이 지났다고는 해도 이 세상으로 나올 때 그는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아마 먹을 것을 훔치러 백인들의 세계로 숨어들어 헛간에 숨어있다 틀켰을 것이고, 그는 자신도 결국은 죽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 주변의 모두가 그렇게 죽어갔으니까.
얼마나 죽음의 공포에 떨었을까. 원문엔 단순히 'frightened'라고 쓰여져 있지만, 그 한 마디에는 그가 느꼈을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과연 함축될 수 있을까? 이시의 성장기엔 국가정책으로도 인디언 머리가죽을 벗겨오면 인디언 성인은 얼마, 인디언 어린이는 얼마.. 이런 식으로 현상금이 걸려 있던 시절이었고,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심지어는 근세에 와서 루즈벨트 대통령 같은 사람도 인디언에 대해서는 극도의 인종차별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인디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니까.
지금은 인디언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들은 미국에서 주인자리를 빼앗긴 minor일 뿐. 'Indian Reservation' 이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그 차별이 아직도 존재함을 노래로 읊고 있다.
* 위 자료는 몇 군데의 자료를 가져다가 축약해석한 것임.
1. AAANativeArts.com
: Celebrating native american indian tribes of the US and Canada
http://www.aaanativearts.com/article624.html
- 북미대륙의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종합적인 소개 싸이트.
소식지도 발간하고 있음.
- 위 싸이트에서의 이시에 관한 자료 링크
http://www.aaanativearts.com/article624.html
: 이시에 관한 간략한 소개 내용임
2. Ishi's Brain : In Search of America's Last "Wild" Indian (by Orin Starn)
http://www.amazon.com/gp/reader/0393051331/ref=sib_dp_pt/103-1264183-9772657#reader-link
이곳에서는 인디언 이시의 얼굴을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그러나 마우스 오른쪽 버튼 사용을 금해놓아서 사진을 복사할 수가 없었음.
위 글중 본문은 위 링크로 본 책자중 pp. 23 ~ 26까지의 내용을 줄여놓은 것임.
3. Gallen Digital Library of UCSF, "Ishi, The Last Yahi"
http://www.library.ucsf.edu/collres/archives/hist/ishi/
- 이시에 대한 연구서들의 종합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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