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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100인] 27.향토사가 서계당 이훈익 |
신문명 파고 맞서 '항도 뿌리' 보존 산 증인 1916년 서구 현희동 출생 한문, 일어 능통 공직생활 틈틈이 향토사 수집 발굴 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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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史 쓰라 할아버지 유언.. 아버지에게 평생 짐된 듯"
- 이훈익 선생 차남 이원규 교수 인터뷰
이훈익 선생이 향토사 연구에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데는 1955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부평향교 전교(全校;향교
책임자)를 지냈던 선친(이현신)의 영향이 컸다는 게 차남 이원규(57) 교수의 회고다.
“선친이 돌아가시면서 부평사(史)를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아마 그 유언이 아버님에게는 평생 짐이 됐던 것 같습니다.”
70대에 앓기 시작한 협심증으로 개심수술(83세)을
포함해 5차례 이상의 대수술을 견뎌내며 향토사 연구에서 손을 떼지 않았던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뛰어난 한문(漢文) 실력과 지칠 줄 모르는 인내력 그리고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쌓은 지역유지들과의
친분 등도 선생이 향토사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또 다른 계기였다.
“고지식한 분이셨습니다. 노래나 바둑·장기 등 잡기는 전혀
즐기지 않으셨으니까요. 모든 에너지를 향토사 연구에 쏟아부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학술적 체계가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아버님에게 부족했던 부분은 후학과 소장 학자들이 채워주리라 믿습니다.”
이 교수는 선친의 '인천지방향토문화연구소'를 지켜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 인천을 무대로 한 창작 소설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해방공간 인천을 무대로 좌우 이념대립을 그린 소설 '황해'를
비롯해 40여편의 소설 가운데 인천을 소재로 한 것이 30여편이나 된다.
“초등학교를 나와 공무원 생활을 하셨던 아버님이 남기신
향토사료집 내용이 학술적 체계가 미진한 것은 당연합니다. 한 자연인의 순수한 향토애(愛)의 열정으로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도 향토사 연구에
밑거름을 뿌렸다는데 만족해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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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속 지역기사 체계적 정리, '인천학' 출범 가능케 한 史家"
사실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지역 대학은 물론 인천 출신의 소장 학자들조차 대부분
지역사 혹은 향토사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현실이었다. |
김도현·kdh69@kyeongin.com / 200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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