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데먀님의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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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자살 결심한 31살의 '비망록'… 전혜린 미발표 원고 공개 | **BoOKsTorY** | 2005/07/05 23:18 | |
http://blog.naver.com/kittygiri79/60014691377 | ||
출처 : The 아가씨 | ||
자살 결심한 31살의 '비망록'… 전혜린 미발표 원고 공개
1934년 1월 1일 (일요일) 평안남도 순천에서 출생. 경기 여중*고 졸업 1952년 서울대 법과대학 입학 1955년 서울대 법대 재학중 독일로 유학, 1959년 뮌헨대 독문과 졸업후 귀국 서울대 법대 * 이화여대 강사 * 성균관대 교수 지냄 1965년 1월 10일 (일요일), 자살로 생을 마감, 경기도 안양시 조남리 선산에 잠들어 있다. 번역서 어떤 미소 (F * 사강, 1956) 한 소녀의 걸어온 길 (E * 슈나벨, 1958)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1959) 파비안 (E * 케스트너, 1960) 생(生)의 한 가운데 (루이제 린저, 1961) 에밀리에 (H * 게스턴, 1963) 그래도 인간은 산다 (W * 막시모프, 1963) 태양 병(病) (H * 노바크, 1965) ............................................................................................................................... ![]() 천재작가 전혜린 미공개 수필 발굴 월간 '춤' 조동화씨 소장원고 첫 공개…요절 운명 예견 요절한 천재작가 전혜린(田惠麟ㆍ1934~1965)의 미공개 수필이 발굴됐다. 월간 ‘춤’ 4월호는 ‘전혜린 미공개 수상(田惠麟 未公開 隨想)’이라는 제목의 특집에서 전혜린의 수필과 짧은 사진평을 게재했다. ‘밤이 깊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수필은 월간 ‘춤’의 발행인 조동화(趙東華 ㆍ80)씨가 갖고 있던 원고로, 처음 공개된다. 여성 법학도이자 독일문학가, 수필가였던 전혜린은 두 권의 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를 남기고 요절했다. 전혜린의 글은 60, 70년대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문학에 대한 열병을 앓게 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들에게 통과의례가 되고 있다. 조씨는 “생전에 전혜린과 친분을 나누면서 그가 무용에도 조예가 깊은 것을 알고 원고를 청탁했었다”고 회고했다. 조씨는 “전혜린이 사망하기 1년전인 1964년에 독일 산문을 번역한 것과 이 수필을 받았다”면서 “월간 ‘춤’ 창간 10년 전인 66년에 무용평론 동인지를 창간, 번역문은 게재했지만 이후 동인지가 속간되지 못해 수필은 30년 넘게 묻혀졌다”고 밝혔다. 조씨는 “그동안 서재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잊었던 것을 책을 정리하면서 다시 찾아내 잡지에 싣게 됐다”고 말했다. ‘밤이 깊었습니다’는 우울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추악하고 권태로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전혜린은 이어 밤에 대한 찬사를 시작한다. “낮은 적나라(赤裸裸)한 일광(日光)으로 모든 낭만(浪漫)을 박탈해버리는데 비(比)해서 밤은 우리를 꿈 속같이 막연하고 불투명(不透明)하게 부드러운 낭만으로 감싸줍니다. 우리들 인간(人間)은 너무나 불완전(不完全)하기 때문에 밤이 절실(切實)히 필요(必要)합니다.” 전혜린은 안식을 주는 밤에 몸을 맡기기를 간청한다. “낮의 생활의 소용돌이가 남겨놓은 원색(原色) 자갈돌을 어둠으로 덮으십시오. 암흑(暗黑)을 포옹하십시오. 순수를 갈구(渴求)하십시오.” “산문(散文) 대신에 시(詩)를, 계산(計算) 대신에 낭만을, 현실(現實) 대신에 꿈을 우리에게 갖다주는 것은 다만 밤 뿐”이라면서 전혜린은 밤의 소중함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이듬해 자살로 마감하는 짧은 인생에 일찌감치 드리워진 그늘로도 읽혀진다. 그는 “낮을 관념(觀念)이라면 밤을 땅이라고 육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면서 “우리의 영혼의 향수가 향하고 있는 것은 밤입니다”라고 적는다. 어렸을 적 지독하게 어둠을 무서워했다는 전혜린이 쓴 수필은 어둠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하다. 죽음에 대한 유혹처럼 읽힐 정도이다. 함께 실은 ‘우라노바의 ‘빈사의 백조’ 사진에 부쳐서’라는 단상에서 그는 “죽엄은 재빠르게 그리고 거이 돌연(突然)하게 온다”고 쓴다. 수필에서도 “‘아무것도 안 일어났고 안 일어나며 앞으로 일어날 수 없는데 이 생을 무엇 때문에 일초(一秒)라도 더 견딜 필요(必要)가 있단 말인가’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우리 가슴에 들릴 것이니까요.” 전혜린은 “우리는 그 목소리에 귀를 막도록 애써 봅시다”라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목소리를 뿌리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1965년 1월10일 3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 (2002.04.07) "괴로운 사람이 밤을 사랑…" 죽기직전 미발표 원고 발견 월간 '춤' 4월호에 실려 작가 전혜린(1934.1.1~1965.1.11)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1~2개월 전에 쓴 미발표 원고 '밤이 깊었습니다'가 공개됐다. ![]() 조씨는 "지난 1월 집에서 서류와 책 등이 담긴 궤짝을 정리하다 이 원고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1964년 당시 동아방송에서 일하던 조씨와 이두현 전 서울대 교수, 무용평론가 김병옥.박용구씨 등이 주축이 돼 준비하던 동인지 '춤'은 66년 7월에서야 첫 호를 내고 금전적인 문제 등으로 더이상 발간하지 못했다. 이 동인지에는 전혜린씨가 '밤이 깊었습니다'와 함께 보냈던 번역 원고 '육체의 변증법'만이 실려 있으며 편집 후기에는 "책의 발간이 늦어져 전혜린(田惠麟)씨는 그 동안 고인(故人)이 되었다"고 쓰여있다. 조씨는 "'밤이 깊었습니다'는 원래 그 다음 호에 실을 계획이었느나 발간이 무산되면서 미발표 상태로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밤이 깊었습니다'에는 현실의 고단함과 대비해 죽음에 대한 찬양어린 글귀가 자주 등장하고 있어 전혜린이 자살을 결행하기까지의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다. "모순과 갈등, 그리움과 환멸의 불연속선(不連續線)인 생에 대해서 죽음은 휴식과 모든 투쟁의 종언을 뜻합니다. 생이 위대한 대낮이라면 사(死)는 밤일 것입니다. 모든 모순과 분규를 일단 그대로 받아들인채 포근히 감싸덮고 마는 포섭력과 유화력의 소유자가 밤입니다. 괴로운 사람일수록 밤을 사랑합니다." 평안남도 순천 출생인 전혜린은 경기여자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재학 중 독일로 유학간 당대의 여성 엘리트. 서른 한 살에 자살을 결행하기까지의 삶의 비극성과 유려하고 감상적 문체가 전혜린을 신화화했다. 사후인 68년에 출간된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일기 모음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는 문학 지망생들의 필독서로 자리하고 있다. ............................................................................................................................ ![]() (2002.04.07) [문화] 천재작가 전혜린 미공개 수필 발굴 요절한 천재작가 전혜린(田惠麟ㆍ1934~1965)의 미공개 수필이 발굴됐다. 월간 ‘춤’ 4월호는 ‘전혜린 미공개 수상(田惠麟 未公開 隨想)’이라는제목의 특집에서 전혜린의 수필과 짧은 사진평을 게재했다. ‘밤이 깊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수필은 월간 ‘춤’의 발행인 조동화(趙東華 ㆍ80)씨가 갖고 있던 원고로, 처음 공개된다. 전혜린의 글은 60, 70년대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문학에 대한 열병을 앓게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들에게 통과의례가 되고 있다. 조씨는 “생전에 전혜린과 친분을 나누면서 그가 무용에도 조예가 깊은것을 알고 원고를 청탁했었다”고 회고했다. 조씨는 “전혜린이 사망하기 1년전인 1964년에 독일 산문을 번역한 것과이 수필을 받았다”면서 “월간 ‘춤’ 창간 10년 전인 66년에 무용평론동인지를 창간, 번역문은 게재했지만 이후 동인지가 속간되지 못해 수필은30년 넘게 묻혀졌다”고 밝혔다. 조씨는 “그동안 서재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잊었던 것을 책을 정리하면서 다시 찾아내 잡지에 싣게 됐다”고 말했다. ‘밤이 깊었습니다’는 우울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추악하고 권태로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 전혜린은 이어 밤에 대한 찬사를시작한다. “낮은 적나라(赤裸裸)한 일광(日光)으로 모든 낭만(浪漫)을 박탈해버리는데 비(比)해서 밤은 우리를 꿈 속같이 막연하고 불투명(不透明)하게 부드러운 낭만으로 감싸줍니다. 우리들 인간(人間)은 너무나 불완전(不完全)하기 때문에 밤이 절실(切實)히 필요(必要)합니다.” 전혜린은 안식을 주는 밤에 몸을 맡기기를 간청한다. “낮의 생활의 소용돌이가 남겨놓은 원색(原色) 자갈돌을 어둠으로 덮으십시오. 암흑(暗黑)을 포옹하십시오. 순수를 갈구(渴求)하십시오.” “산문(散文) 대신에 시(詩)를, 계산(計算) 대신에 낭만을, 현실(現實)대신에 꿈을 우리에게 갖다주는 것은 다만 밤 뿐”이라면서 전혜린은 밤의소중함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이듬해 자살로 마감하는 짧은 인생에 일찌감치 드리워진 그늘로도읽혀진다. 그는 “낮을 관념(觀念)이라면 밤을 땅이라고 육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면서 “우리의 영혼의 향수가 향하고 있는 것은 밤입니다”라고 적는다. 어렸을 적 지독하게 어둠을 무서워했다는 전혜린이 쓴 수필은 어둠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하다. 죽음에 대한 유혹처럼 읽힐 정도이다. 함께 실은 ‘우라노바의 ‘빈사의 백조’ 사진에 부쳐서’라는 단상에서그는 “죽엄은 재빠르게 그리고 거이 돌연(突然)하게 온다”고 쓴다. 수필에서도 “‘아무것도 안 일어났고 안 일어나며 앞으로 일어날 수 없는데 이 생을 무엇 때문에 일초(一秒)라도 더 견딜 필요(必要)가 있단 말인가’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우리 가슴에 들릴 것이니까요.” 전혜린은“우리는 그 목소리에 귀를 막도록 애써 봅시다”라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목소리를 뿌리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1965년 1월10일 3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 (2002.04.09) [편집국에서] 봄물처럼 번져가는 아름다움 시인이자 ‘깡통’을 쓴 동화작가 이상희(42)씨는 원주에 산다. 그는 요즘 치악산을 물들이는 봄꽃을 보면서 꽃이야말로 문화라는 생각이든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감추지도 아끼지도 않고 보는 이 누구에게나 행복을 나눠주는꽃을 보며 바로 이런 것이 문화라고 느낀다고 했다. 60, 70년대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천재작가 전혜린(1934~1965)의 미공개 수필이 발굴되었다는 기사(5일자)를 싣는 과정에서 한국일보문화부는 꽃이 주는 행복감을 80줄의 문화인에게서 발견했다. 이날 신문을 본 독자들은 전혜린의 수필 ‘밤이 깊었습니다’를 읽으며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정신은 오히려 풍요롭던 60년대 지식인의 사유가그대로 드러나는 글의 향연에 흠뻑 빠져보았을 것이다. 원래 전날 저녁 6시쯤 발행되는 한국일보 초판에는 전혜린의 수필은 실리지 않았었다. 그의 미공개 수필이 월간 ‘춤’지에 의해 공개됐다는 사실만이 보도됐을뿐이었다. 초판 신문을 평가하는 저녁 부장회의에서 수필 원문도 신문에 실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 문화부장으로서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춤’지는 그 수필을 발굴한 조동화(80)씨가 어렵사리 꾸려가는 무용전문지라는 사실을 알기에, 전혜린의 수필을 읽고자 하는 이들이 쏟는 관심은 한국일보보다는 ‘춤’지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송PD 출신인 조동화씨는 지금도 무용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다할 수없는 한국에서 76년 ‘춤’을 시작한 후 한결같은 정열로 이 전문지를 이끌어오고 있었다.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일부 받고는 있지만 지금도 이 잡지를 계속 낼 수있게 하는 재원은 조동화씨의 아들이 하는 출판사(늘봄)에서 일부가 나온다. 그런만큼 전혜린의 수필 공개로 이 ‘가난한’ 잡지가 조금 더 팔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다행이랴 싶었다. 그러나 수필을 수록하고 싶다는 주위의 채근에 못이겨 담당기자가 출판사로 의견이나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조동화씨는 흔쾌히 실어도 좋다고 했다. 아니 “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유가 명쾌했다. “아주 좋은 글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한다. ” 전혜린의 글을 38년만에 공개하면서 조동화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전혜린의 사유를 만끽하기만을 바랐다. 오늘날 문화가 산업이 되면서, 문화는 사실 문화의 얼굴을 잃어버리고있다. 문화조차 등가대의 재화와 맞교환된다는 산업의 논리가 자리를 잡으면서인간의 삶을 고양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자각케 하는 문화의 진면목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기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문화란 좀더 세련된 형태의 정보가공산업이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서 문화란 다만 꽃처럼 물처럼 자연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풍요로움을 더불어 나누며 더욱 풍요로워지자는 것이라는 문화인들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동화작가 이상희씨는 2년째 동네의 어린이집을 찾아 동화책을 읽어주는일을 하고 있다. 그 역시 진짜 문화인인 것이다. 서화숙 (문화부장) ............................................................................................................................... ■ 전혜린의 ‘밤이 깊었습니다’ 원고 전문(全文) □ 다량의 수면제를 삼키고 세상을 떠났던... '전혜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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