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바뀐다> ③사회변화로 단어 뜻도 확장
기사입력 2010.10.15. 오전 7:29 최종수정 2010.10.15. 오전 10:25
광화문에 한글 의자가 나타났다!
(서울=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글의 날을 기념해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12개의 한글 자음 디자인 의자를 설치했다.<자료사진><< 문화체육관광부 >>
물건 살 때 '지르다', 돈낼 때 '쏘다' ... 사전엔 없어
구체적 개념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단어 뜻 늘어나
전문가들 "그러나 표준어 인정은 최대한 신중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오늘 원피스 하나 질렀어." "1차는 네가 내라. 2차는 내가 쏠게."
이 문장들은 주위에서 흔히 듣고 쓰는 말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속어적 표현이다.
'지르다'와 '쏘다'는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어지만 예로 든 문장에서는 사전에 올라 있는 용례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 문장에서 '지르다'는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다'는 의미로, '쏘다'는 '다른 사람의 비용까지 지불하다'는 뜻으로 각각 쓰였다. 기존의 단어 하나로는 뉘앙스까지 정확하게 반영하기 힘든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 존재하던 단어가 새로운 뜻을 지닌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상과 새로운 문물을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들이 쉼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처럼 기존에 있던 단어가 확장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적잖게 눈에 띈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이 표준어로 인정받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언어생활에 상당한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표준어 인정은 최대한 신중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 비유적 표현이 새 뜻으로 굳어져
단어의 의미가 확장돼 쓰이는 경우에는 비유적 표현으로 일부에서 사용되던 것이 널리 퍼진 경우가 많다.
앞서 예로 든 '지르다'의 경우, '팔다리나 막대기 따위를 내뻗치어 대상물을 힘껏 건드리다'(표준국어대사전)는 의미가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다'는 뜻으로 연상작용을 거쳐 새 의미를 획득한 경우다.
박동근 건국대 교양학부 교수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구체적 의미에서 추상적 의미로 확장돼 간다"고 말했다.
'틈'이 과거 구체적인 공간적 개념만을 일컫다 추상적인 시간적 개념까지 포괄하는 단어로 확장되고, '거품'이 '거품 경제'처럼 '껍데기만 있고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이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단어의 뜻 확장은 과거부터 있어왔다.
가령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기존에 있던 '걸다'라는 동사가 '기계장치를 작동시킨다'는 의미로 확장돼 '시동을 걸다'라는 형태로 사용되는 식이다.
이처럼 단어의 뜻이 확장된 사례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쏟아졌다.
기본적 정보저장 단위인 '파일'과 관련된 예만 봐도 ▲파일을 '깔다' ▲파일이 '깨지다' ▲파일을 '실행하다' ▲파일을 CD에 '굽는다' 등으로 기존의 동사가 의미를 확장해 쓰이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파일'은 영어를 차용해 외래어로 굳어졌지만, 동사는 기존에 있던 단어가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명사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동사는 그렇지 못해 기존의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실제 새로운 단어의 90%는 명사"라고 말했다.
◇ 모든 계층에서 꾸준히 사용해야 표준어
하지만 이런 단어들이 많이 사용된다 해서 곧바로 표준어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라고 해도 표준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행 표준어 규정에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모든 연령층과 사회 계층이 최소한 4∼5년은 꾸준히 사용해야 표준어로 국어사전에 올라갈 수 있는 후보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따'는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사용돼 왔지만 2008년에야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될 수 있었고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파일이나 자료를 받는 행위를 칭하는 '내려받다'도 같은 해에 사전에 올라갔다.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작업을 하는 국립국어원 이운영 연구관은 "모든 계층에서 동일한 의미로 꾸준히 사용할 때에야 비로소 사전에 등재된다"면서 "한국어로 인정받는 작업이니 되도록 보수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작업들은 국립국어원 차원에서 이뤄지지만 논란이 있는 단어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어심의위원회에서 별도로 심의한다.
심의위는 국어학자와 언어학자를 비롯해 한글학회ㆍ학국문학번역원 등 국어 관련 공공기관의 기관장 등 총 47명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으며 1년에 2∼3차례 모여 표준어 인정 여부 등을 논의한다.
심의위는 표준어 인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 실태조사, 여론조사 등을 거친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논의돼 왔지만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한 단어들은 ▲'∼길래'(표준어는 '기에') ▲맨날(표준어는 '만날') ▲복숭아뼈(표준어는 '복사뼈') 등이 있다.
국어심의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국립국어원 조남호 어문연구실장은 "새로운 단어를 표준어로 인정하는 작업은 언어생활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transil@yna.co.kr
출처 : 연합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4708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