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학사의 기념비적 로켓발사 시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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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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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는 1960년 11월 19일 우리나라 최초 로켓발사 시험을 실시했다. 이 날 발사된 로케트는 학생회 공작부 산하 로켓 반에서 제작한 ‘IITO-1A, 2A’이다.
▲ 1960년 인하대학교 인천 송도 앞바다에서 'IITO-2A' 로켓발사
로켓 발사 성공은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60년대에는 전세계가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트’발사 성공으로 로켓 개발 경쟁이 치열했다.
1962년 ‘IITRA-1’, ‘IITRA-2’가 각각 9월 27일, 10월 2일에 발사됐다. 추진제 실험을 목적으로 한 발사시험에서 ‘IITRA-2’는 정상비행을 했으며, 64년 6월 10일 같은 목적으로 실시된 ‘IITA-1’을 통해 추진체 검증을 완료한다.
- 인하대학보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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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3월 24일 15:54:38 / 수정 : 2008년 03월 24일 15:56:27
* 옮긴이 註 기록을 찾아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발사 성공은 국방과학기술연구소가 1959.7.27, 인천 고잔동 해안에서 1,2,3단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고 되어 있음. 한국화약이 인천 고잔동에 있다는 사실에서 첫 발사실험장소가 고잔동 해안이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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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하대 |
1958년부터 1967년까지 |
인하학보 창간 당시는 우리학교 개교 5주년이 되는 해였다. 따라서 신문은 당시 학교가 자리잡아가며 발전해가는 모습인 건물 신축, 학과개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신문에 다루었다.
1954년 우리학교가 설립된 이후 많은 건물이 신축됐는데 이는 인하학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하대학신문의 기사 ‘화학공학관 드디어 완성’(58년 제3호), ‘부설 중앙 종합직업 학교 개설’(58년 제4호), ‘공학 실습실 건립’(59년 제6호), ‘제 3 공학관 준공’(59년 제9호), ‘도서관 신축’(59년 제10호) 등이 이를 확인시켜준다.
건물 신축에 맞춰 학교 내에 학과(부)가 신설됐으며, 공학대학원 설립이 교육부에서 승인받는다. 인하학보는‘병기 원자력 공학부 신설’(58년 창간호),‘부설 공업 고등 전문학교 신설’(67년 제105호), ‘정밀 기계과 신설’(67년 제125호) 등의 소식을 전달했다. 대학원 설치는 58년 제 2호 인하학보에서 보도됐으며, 학과는 금속·전기·조선·화학공학부로 구성됐다.
또한 ‘제1회 졸업식’(58년 2호) 기사는 우리학교에서 58년에 최초 졸업생 1백21명을 배출했음을 보여준다. 이 날 졸업식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참석해 졸업생들에게 ‘과학을 많이 배우라’는 주제의 연설을 했으며, 인하학보는 이 연설문을 게재했다.
또한 인하학보는 우리학교와 하와이 동포간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하와이 교포 내교-주머니 돈 털어 장학금’(61년 제17호) 기사에 의하면 하와이 교포들은 우리학교 발전에 매우 기뻐하면서 “베리베리 기뻐요”를 연발했고, 즉석에서 돈을 털어 장학금을 내놓았다고 한다. ‘하와이 교포 내교’(66년 제44호) 기사에서 하와이 교포 여자 방문단 일행은 “우리 하와이 교포는 뜻 깊은 인하대학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학생 여러분의 성실한 공부로 가난한 우리나라를 부흥시켜 달라”고 말했다고 서술했다.
또한 이승만 정권의 몰락 이후 우리학교가 위기를 맞았을 때 하와이 교민의 걱정을 엿볼 수 있었다. ‘하와이 교포 내방’(62년 제27호)에서 하와이교포 최덕열 씨는 재단문제, 학교운영 등을 당시 김장훈 학장과 비공개로 논의했다.
이 시기 우리학교에서 우리나라 과학사적인 업적이 비교적 많이 성취됐다. 그 중 가장 의미 있는 사건으로 로켓 발사를 꼽을 수 있다. 우리학교 스카이라운지 근처에 세워진 로켓모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로켓발사 성공 당시의 준비모습으로 추정됨. 이 사진 속의 로켓이 1960.11.19 최초의 발사성공 로켓이 맞다면, 이 로켓은 인천송도에서 발사되어 강릉까지 날아간 로켓이다. 사진출처: inhanews.com>
* 옮긴이 주: 우리를 가르치시던 강의덕 교수님은 60년대초 로켓실험중 오른손을 잃고, 왼손으로 글씨를
쓰시면서 가르치셨었다.
인하학보는 ‘실험용 2단계 로켓 제작 착수, 본대학 병기공학부 로켓트반에서’(61년 제18호)를 시작으로 ‘우주과학 연구회, 로켓트 추진제 합성에 서광-로켓트 쏘아올려’(62년 제27호) 등 62년부터 64년까지 총 12회 걸쳐 기사를 게재했다. 이외에 ‘4백만 eV Betatron 한국 최초로 제작에 성공’, ‘국내 최초 하이드로 포일 보트 진수식’(62년 제23호), ‘수준원점 설캄(63년 제37호), ‘국산 제2호 표준형 전자계산기 제작’(64년 제44호) 등이 신문에 보도됐다.
입력 : 2008년 03월 24일 15:58:49
*출처: 인하대학 신문 http://www.inhanews.com/
<사진출처: http://gall.dcinside.com/list.php?id=inha&no=44917>
이 모형로켓은, 1964년 발사된 IITA-7CR 로켓의 축소모형이다.
* 아래는 인하대의 로켓발사 성공 사실을 수록한 '조은뉴스'의 기사.
▲ 1960년 인하대학교 인천 송도 앞바다에서 'IITO-2A' 로켓발사
오는 7월 말 대한민국의 꿈과 희망을 실은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KSLV-1)’가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 오는 7월말 발사될 대한민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KSLV-1)호'
자체적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서 단지 9개국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우주개발에 뒤늦게 참여한 것을 고려할 때 발사체와 발사시설의 개발속도 및 성과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성과는 인하대학교와 무관하지 않다. 인하대학교의 로켓개발 역사가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하의 로켓개발은 1958년 신설된 병기공학과 주도로 1960년 11월 19일 자체 기술 로켓인 ‘IITO-2A’를 송도앞바다에서 발사함으로 시작되었고, 국내외 사정으로 1962년 병기공학부가 폐과된 이후 ‘우주과학 연구회’가 인하대학교에 발족되어 1964년 ‘IITA-7CR’(현재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옆에 모형으로 전시) 발사 및 1968년 ‘IITA-X21’발사 까지 로켓 개발을 이어갔다.
이러한 인하대학교 동문 선배들의 로켓개발 의지와 연구경험은 1970년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ADD) 로켓개발로 이어져 자주국방의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NASA 최장수 한국인 연구원이자 세계적 석학인 최상혁(인하대 기계공학과,68학번)박사를 비롯한 항공우주 산업 전반에서 활약하고 있는 많은 동문을 배출하는 초석이 되었다.
▲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인하대학교 고분자공학과 71학번)
또한, 인하대학교의 자랑스러운 동문인 민경주 박사(인하대 고분자공학,71학번)가 ‘나로우주센터’ 센터장으로 우리나라의 우주시대를 선두에서 추진하고 있음은 우연한 일이라기보다는 인하대학교 로켓개발의 역사를 이은 것.
[조은뉴스-조순익 기자(전남)]
* 관련 글 : "우주를 향한 대한민국 최초의 도약" - egloos 블로그 "초효의 비밀아지트" 중에서
http://kezs.egloos.com/1715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