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페 오두막마을에서 옮겨옴.
오두막 마을 나무지기님,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보잘것없는 농사꾼을 귀하게 보아 주셔서
무어라 고마운 인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보내드리는 원고(참석자 나눠 드릴 원고임)는 글자 크기와 모양들을
읽기 편하게 편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니면 참석자들이 미리 읽고 올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어지러운 시대, 삶의 새순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늘 건강하시고 기쁨이 넘치는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6. 11. 12.
황매산 자락, 깊고도 작은 산골마을에서
서정홍 드림.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쿠바의 유기농업 1
― 농약이 없는 나라, 기적의 땅, 쿠바로 가는 길
지난달, 농민회 전국본부 정기환 총장이 “형님, 이번에 쿠바에 한 번 다녀오셔야 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지난해 ‘생태귀농학교’를 열면서 읽은 <쿠바의 유기농업> 책 맨 뒷장에 있는 호세 마르티의 시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나는 야자나무 우거진 / 그 땅에서 온 성실한 사람 /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 나 노래하리 / 가슴 아픈 이 시를 / 그 땅의 가난한 이들과 / 내 운명을 함께 하리라 / 대양이 아무리 넓어도 / 내 고향 골짜기 시냇물이 / 나는 더 기쁘고 즐겁다”
‘쿠바의 사도’라고 불리는 호세 마르티가 쓴 이 시는 시대를 넘어 쿠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펜을 잡으면 오후에는 밭을 갈아라.”라고 말한 호세 마르티는 쿠바의 참 시인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시는 영원히 남아서 쿠바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아침에 펜을 잡으면 오후에는 밭을 갈지 않습니다. 한 번 펜을 잡으면 평생 밭을 갈지 않습니다. 밭을 가는 일은 가난하고 못 배운 농부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우리 나라는 죽을 때까지 손톱 밑에 흙을 넣지 않고 사는 것이 집안의 자랑이고, 희망입니다. 그런데 ‘쿠바의 사도’인 호세 마르티는 “아침에 펜을 잡으면 오후에는 밭을 갈아라.”고 했습니다. 쿠바는 호세 마르티 시인의 말대로 농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농부를 가장 으뜸으로 여기고 모든 정책과 대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농민회 일을 하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겨레의 목숨을 이어주는 농촌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늘 대답도 없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벌써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대답을 나는 쿠바에서 찾기로 했습니다. 배우는 것도 때가 있는 법이지요. 그래서 모든 일을 제쳐두고 큰 맘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쿠바에서 보고 듣고 배워서 농약이 없으면 거의 농사를 짓지 못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새로운 대안과 희망을 찾고 싶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인천⇒ 일본 동경 ⇒ 미국 샌프란시스코 ⇒ 멕시코시티 ⇒ 쿠바 하바나 공항까지 네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고 쿠바에 닿았습니다.
기차를 타도 멀미를 하는 내가 꼬박 이틀 동안 비행기를 타고 쿠바까지 간 가장 큰 까닭은 쿠바는 나라 전체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이런 농업을 ‘유기농업’이라 합니다.
해방 후부터 들어온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우리 나라 논밭들은 대부분 깊은 병을 앓고 있는 지금, 쿠바의 유기농업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큰 빛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쿠바로 가는 길은 결코 멀지만은 않았습니다. 병든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는데 쿠바보다 수 백 배 더 먼 곳이면 어떻겠습니까?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쿠바의 유기농업 2
― 쿠바는 어떤 나라인가
쿠바는 카브리해에 떠있는 섬입니다. 국토 면적은 일본의 3분의1 크기며, 아열대성 해양기후로 연간 평균기온이 섭씨 25.5도나 되는 더운 나라입니다. 인구 1100만 명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나라지만,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21세기는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식량전쟁’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은 지금, 쿠바는 식량을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고, 그것도 어디에서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지어서 살아가고 있으니 기적 가운데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은 25%밖에 안 되고, 그것도 쌀을 빼고 나면 5%밖에 안 된다고 하니 우리 민족은 ‘거지민족’입니다. 손발이 멀쩡한데 남의 나라에 손을 벌려서 얻어먹고 목숨을 이어가고 있으니 진짜 ‘거지민족’이지요.
쿠바는 수백 년 동안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 아래 고통을 받다가 1959년 카스트로가 ‘쿠바혁명’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부터 미국의 경제봉쇄로 40년 남짓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미국대륙에서 2백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아스피린 하나 들여오지 못했다고 함) 1980년대 후반부터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소련의 정치?경제?사회 혼란이 쿠바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로 다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입에 의존했던 연간 100만톤의 화학비료, 200만톤의 사료작물, 2만톤의 농약과 기계부품 들을 한꺼번에 공급받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온 백성들이 이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쿠바는 비상사태 선언인 ‘특별시기’라는 이름으로 식량자급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아서 지금까지 유기농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쿠바에서는 농촌에서만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 건물(학교, 병원, 관공서, 주택…)사이 사이와 빈 공터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도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갖가지 유기농법으로 기른 채소와 과일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농약과 방부제, 온갖 첨가물로 범벅이 된 오염된 수입 농산물 때문에 마음 놓고 밥상조차 차릴 수 없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견주면 제 나라 먹을 양식을 거의 자급하는, 그것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쿠바는 축복 받은 나라였습니다.
기적의 땅! 모든 생명이 건강하게 숨 쉬는 땅! 쿠바는 국가에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는 나라입니다. 아무리 깊은 병이 들어도 죽을 때까지 공짜로 치료해 주는 나라입니다.(우리 나라는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거나, 병이 들어도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두 가지만 보아도 쿠바는 말 그대로 ‘지상 천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소중한 일은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농부는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가장 소중한 직업이지요. 모든 직업이 다 사라져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농부가 없으면 어느 한 사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자동차나 컴퓨터를 씹어 먹고 살 수도 없고, 냉장고나 텔레비전을 씹어 먹고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쿠바는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을 잘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훌륭한 나라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평가받는 체 게바라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혁명이 골목마다 깃들여 있는 쿠바는 참 위대한 나라입니다.
어느 나라든 어려운 처지를 겪게 되어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거든 꼭 쿠바에서 배우기를 바랍니다. 같은 사회주의국가지만 북한은 어린아이들까지 살아남기 위해 도망을 가거나 굶어서 죽어가지만, 쿠바는 북한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도 어느 한 사람도 굶어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쿠바의 유기농업 3
― 우리도 쿠바의 새들처럼
쿠바에 닿자마자 ‘사회주의 국가는 재산이 모두 국가 것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욕심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이 참 궁금했습니다.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는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알아줄 사람도 없고, 자기 재산을 가질 수 없으니 일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사람들이 욕심이 없으니 못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쿠바 유기농업 연수에 함께 간 우리 나라 사람들 모두가 그것이 가장 궁금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나훈아의 ‘고향역’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에벨리오 안내자(통역)에게 물었습니다. 노래는 잘 하는데 통역이 영 시원찮은 ‘에벨리오’라는 젊은 안내인한테 우리는 귀찮을 정도로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쿠바에 한국말을 통역해 주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습니까?”
“쿠바 전체에 한국말 하는 사람은 8명밖에 안 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발전도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발전했습니다. 발전 있는 나라입니다. 러시아에서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러시아 없어지고 나서 더욱 열심히 일해서 우리 먹고살았습니다. 내 나라에 대해 거짓말 할 필요 없습니다. 한국말 통역을 제대로 못해서 너무 미안합니다만……. 그리고 사회주의 제대로 알려면 살아봐야 합니다.”
“한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다가 혼인을 하여 아기를 낳으면 방이 하나 더 필요할 텐데, 국가에서 집을 줍니까?”
“필요하면 국가에 신청을 합니다. 당장 나오지는 않지만.”
“당장 나오지 않는다면 불편해서 어떻게 삽니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면?”
“우리는 무소유입니다. 80년대 월급과 지금 월급이 똑같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조금 불편하게 사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삽니다. 그러나 가끔 내일 무엇을 먹을까 걱정도 합니다.”
우리 일행은 쿠바 사람들 만날 때마다 알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팩스도 보낼 수 있느냐? 인터넷도 되느냐? 하늘도 맑고 땅도 농약을 치지 않아서 깨끗한데 왜 물을 왜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느냐? 농사짓고 나면 몇 %를 국가에 주느냐? 돈으로 주느냐? 농사지은 채소를 바치느냐? 씨앗과 거름은 국가에서 주느냐? 농사짓는데 들어가는 경비는 누가 부담하느냐? 돈은 모아서 무엇을 하느냐? 술은 한 잔씩 하느냐? 몇 십 년째 페인트칠을 안 했으면 집들이 저렇게 낡았느냐? 사오십 년이나 된 고물 자동차들을 불안해서 어떻게 타고 다니느냐?
우리 일행들 가운데는 ‘쿠바가 아무리 유기농업을 잘 한다 해도 이런 가난한 나라는 불편해서 못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이 욕심이 없으니 눈빛이 모두 천사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길이 다르고 보는 눈이 다르니 마땅히 생각도 다르겠지만, 누가 뭐래도 내 눈에 보이는 쿠바는 아름다웠습니다. 사람이 욕심 없이 살 수 있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 사람들(자본주의 사람들)은 집을 두세 채 가지고도 불안하고, 먹을 게 많아서 쌀이 남아돈다고 하는데도 서로 속이고 싸우고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많은데…….
‘엉터리 시인’이 보고 느낀 그대로 시 한 편 썼습니다.
우리도 쿠바의 새들처럼
쿠바에는
새들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더라
쿠바에는
개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더라
해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이다
길가에 서 있는 옥수수도
골목마다 핀 노란 해바라기도
잔디밭에 누워서
까닭 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학생들도
훤한 대낮,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애인을 안고 있는 젊은 경찰도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이더라
‘저렇게 살갗이 검을 수 있을까’ 싶은 아가씨와
‘저렇게 살갗이 하얄 수 있을까’ 싶은 사내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더라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허름한 집을 보고
그들이 입고 다니는 낡은 옷을 보고
가난하다고 한다 못산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않았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쿠바는, 결코
가난하거나 불행하지 않더라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쿠바의 유기농업 4
― 오늘이 있기까지
쿠바가 오늘이 있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믿습니다. 숱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쿠바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서 실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쿠바처럼 우리 나라도 국가와 백성들이 나서서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길만이 나를 지키고 우리를 지키고 미래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고통이고 절망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편리함과 돈만 쫓아서 살아가는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고통과 절망뿐이기에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함께 하면 못 할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공원에 쓰레기가 많은 까닭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많이 다녀간 탓이고, 자연이 병든 까닭은 정신이 병든 인간들이 많이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할 일이 많은 것입니다.
사회주의국가 쿠바는 나라 전체가 ‘유기농업’을 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왜냐면 날이 갈수록 생태계가 파괴되어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의 삶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지금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50% 이상이 아토피 피부염, 천식 따위의 무서운 병을 안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은 파괴된 생태계를 살리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유기농업’이 아니면 안 된다고 믿기 때문에 미국, 일본, 독일 들 많은 나라에서 떼를 지어 쿠바를 찾는 것입니다.
쿠바는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처럼 힘세고 못된 나라들 틈 속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 바로 ‘유기농업’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한꺼번에 죽이는 독한 농약을 쓰지 않기 위해 향기 나는 허브 종류 들을 밭 들머리에 심어서 벌레를 쫓아내고, 땅을 못 쓰게 만드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위해 지렁이를 길러서 거름을 만드는 쿠바 농부들의 모습은 이 세상 어느 유명한 학자보다도 더 당당하게 보였고, 성직자보다 더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국가에서는 유기농업 자재를 아주 값싸게 공급해 주고, 여러 가지 유기농업연구소들이 곳곳에 있어 누구든지 유기농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라. 비바람 폭풍이 불어서 농사를 다 망쳐도 국가에서 모두 보상해 주는 나라.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한 주일에 하루는 농업교육을 하거나 농촌에서 일을 하는 나라. 장관, 박사, 의사, 교수보다 농부가 월급이 더 많은 나라.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최고로 받드는 나라. 젊은 농부들이 여유롭게 콧노래를 부르며 농사를 짓는 나라. 어디에서든지 안심하고 먹을거리를 사 먹을 수 있는 나라.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머리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제 손으로 먹을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람이 짓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신이 만든 자연과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았습니다. 나라와 종교와 모든 사회단체의 기본 철학은 농업과 농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서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미국이 없어도(우리 나라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의 ‘밥’이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쿠바처럼, 우리 나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려서 우리가 먹을 양식을 우리 손으로 지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나라 인구 가운데 70% 이상은 농촌으로 돌아가서, 옛날처럼 식구들이 함께 모여 제 식구 먹을 곡식은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아야만, 어떤 일이 벌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당당하게 먹고사는 일’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쿠바의 유기농업 5
― 쿠바의 농부들
교수 월급이 300페소인데 농부는 900페소나 되는 쿠바는 월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라도, 백성들의 목숨을 이어주는 농부들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젊은 농부들도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땡볕에서 웃통을 벗고 삽질을 하는 쿠바의 젊은 농부한테 “앞으로 꿈이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이렇게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욕심 없이 맑고 건강한 젊은 농부의 목소리가 아직도 나를 따라 다닙니다.
논밭 가까이에서 담배 피우면 벌과 나비가 날아가 버린다고, 벌과 나비가 날아가 버리면 농사를 다 망친다고, 제발 논밭 가까이에서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던 그 젊은이한테 채소밭 가에 옥수수를 왜 심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첫 번째, 옥수수 키가 크므로 다른 작물의 바람막이가 되고 두 번째, 나쁜 벌레들이 채소한테 가지 않고 옥수수에 붙어서 살 수 있게 하고 세 번째, 내가 옥수수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채소밭에 농약을 뿌렸는지, 왜 벌레가 한 마리도 안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날마다 잘 살펴보고, 벌레가 보이는 대로 내가 손으로 잡아버리니까 없겠지요.”
쿠바는 농부들한테나 연구소 직원들한테나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친절하게 다가와 설명을 해 주면서 농담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 주었습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땡볕 아래 일하면서도 어찌 이런 마음의 여유가 나올 수 있을까요?
쿠바의 농부들은 6개월마다 15일씩 휴가를 간답니다. 노동자들처럼 7시 출근하여 12시까지(30분 남짓 새참 시간도 있음) 일하고, 더운 낮에는 조금 쉬다가 오후 5시쯤 퇴근합니다. 그리고 일만 평밖에 안 되는 땅에서 47명이 농사지어서 부족한 것 없이 잘 먹고 사는 농장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십만 평 땅에 농사를 지어도 한두 가족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그만큼 국가에서 지원을 한다는 말이겠지요. 우리 나라는 언제쯤 이런 세상이 올까요? 현재, 우리 나라는 3대가 굶어죽을 각오로 농업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인데 누가 농사를 짓겠어요. 국가에서 특별한 지원도 없고, 애써 농사지어 놓으면 수입해서 농산물 값이나 팍팍 떨어뜨려 놓기나 하니…….
우리 나라도 앞으로 농약과 화학비료 지원할 돈으로 유기농 자재를 정부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쿠바처럼 소농(가족농)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대농은 어차피 큰 나라에 이익만 줄뿐이니까요. 왜냐면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외국 농산물 가격과 품질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 나라가 살 길은 소농밖에 없습니다.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는 적이 정확하게 눈에 보여서 총으로 혁명을 했지만, 지금 우리는 적이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 겨레인데도 생각이 수천 가지니 누가 적인지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 백성들이 헷갈리고 있으니,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카스트로는 정권을 잡자마자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농업 책을 100권 넘게 읽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 농업이 망하고 농촌이 다 무너지고 있는데도 대통령이 농업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혁명은 내부로부터 온다’고 합니다. 입만 살아서 떠들어대는 한국 정치 지도자들과 온몸으로 살아 움직이는 쿠바 정치 지도자들의 차이를 어디에 견주면 좋을까요?
지난 50년 동안 우리 나라는 농업과 모든 분야에서도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다른 나라도 거의 마찬가지겠지요) 이대로 가다가는 자연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우리 인류에 무서운 재앙이 닥칠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혼란의 시대를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부터 바꿀 것입니까? 나무 그늘에 혼자 앉아 영혼의 소리를 들어보면 금세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고.’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쿠바의 유기농업 6
― 쿠바의 수도 하바나 풍경
쿠바의 수도인 하바나 시에 있는 아파트나 일반주택들이 몇 십 년째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도 사오십 년 전에 미국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들을 타고 다니니 소리도 시끄럽고 매연이 심하게 나왔습니다. 그나마 자동차가 몇 대 없으니 큰 다행이지요. 택시 대신 마차와 인력거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모습이 마치 옛날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바나 시내 길거리에 신호등도 거의 없고 중앙선도 안 보입니다. 보인다고 해도 몇 십 년 전에 그은 중앙선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쿠바에서도 티코, 아반떼, 봉고 들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들은 고급 공무원들이나 탈 수 있다고 합니다.
1832년도에 지은 아바나 극장이 낡은 그대로 버티고 있고, 여기저기 건물들이 금방 무너질 것처럼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그 불안한 건물 속에서 사람들이 빨래를 널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20년된 아파트도 헐고 다시 지으려고 야단법석을 떠는데 어찌 저런 곳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우리는 겁이 나서 하루도 못 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왜 이리 느린지 그리고 차들도 천천히 달립니다. 길거리에 혼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도 많고, 공원이나 길거리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멕시코는 자동차도 빨리 달리고 사람들도 바쁘게 보였는데 쿠바는 자동차도 느리고 사람들도 느긋하게 보입니다.
바쁘게 사는 자본주의 나라는 거지가 많은데 쿠바처럼 바쁘게 살지 않는 나라가 오히려 거지도 없고 굶어죽는 사람도 없다고 하니, 세상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 한가롭게 보이고, 뚱뚱한 여성들도 배꼽티를 입고 다닙니다. 우리 나라 여성들은 남부끄러워서 꿈도 꾸지 못하고, 다이어트니 뭐니 하다가 돈 날리고 사람까지 버리는 여성들이 수두룩한데, 쿠바 여성들은 참 당당하게 사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가 옆에 있는데도 아내를 무릎에 앉혀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림 한 폭 같았습니다.
쿠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어느 사람과 대화가 끝나지 않으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절대 다른 곳으로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큰소리로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막 끼어들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쿠바 하바나 대학에 다니는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배울 게 많았습니다. 쿠바에는 인기 직종에 따라 공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직종에 따라 월급이나 대우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답니다. 한국처럼 부모 등골 다 빼먹는 학원도 없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전문학교로 부모와 함께 가서 시험을 치른 뒤, 부모와 교사가 함께 의논하여 선택을 한다고 하니 아이고 어른이고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쿠바도 사람 사는 나라인데 어찌 걱정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걱정들만큼 또 다른 걱정들이 있겠지요. 내가 쿠바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은 어쩌면 속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보고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쿠바를 보고 글을 썼다는 것은 믿어도 좋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 그것이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그것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일은 농촌 사람들만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국가와 종교와 모든 백성들이 함께 나서야 합니다. 쿠바처럼 ‘비상사태’를 선언해서라도 계획을 세워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굳건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쿠바에서 배운 가장 큰 희망입니다.
― 위 글은 지난 2003년 5월 21일부터 6월 1일 사이
‘쿠바 유기농업 연수’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쿠바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마음가는 대로 적은 것입니다.
비록 서툰 글이지만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데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너희들이 유기농을 아느냐?
갑자기 온 나라에 ‘웰빙’ 바람이 일고 있다. 여태 살면서 잘 듣지도 알지도 못한 말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사람 정신을 쏙 빼 놓고 있다. 얼마 전에 우리 농산물을 파는 가게인 ‘한겨레초록마을’이 벌써 100호점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신문 광고를 보았다. 몇 해 전만 해도 손님이 알아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을 것인데, 왜 요즘은 도시마다 무농약이니 유기농이니 하는 농산물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신씨네, 유기농뜨락, 한살림, 우리농, 무슨 무슨 생협과 공동체까지 더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유기농산물을 구입하여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채소, 분유, 주스, 쌀, 과일 가릴 것 없이 유기농 유기농 하면서 몰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나라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다.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이 유기농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유기농이 무엇이란 말이냐? 유기농산물을 줄여서 쓰는 말이다. 그럼 유기농산물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농약?화학 비료 따위를 쓰지 않고, 유기 비료를 써서 지은 농산물을 말한다. 그럼 유기 비료란 무엇이냐? 성분이 유기물인 비료, 곧 동식물의 비료(녹비, 퇴비, 어비 따위)를 말한다. 그럼 유기물이란 무엇이냐? 생물에서, 생체(生體)를 이루고 그 기관을 조직하는 물질을 말한다.
유기농이란 말을 조금더 쉽게 말하자면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 비료를 써서 농사를 지은 농산물을 말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유기 비료다. 보기를 들면 우리 나라는 대부분 소, 돼지, 닭의 똥오줌으로 거름을 만들어 쓰는데 그 똥오줌이 가장 큰 문제다. 옛날처럼 한 집안에서 동물을 몇 마리 남짓 기를 때는 풀과 먹다 남은 음식으로 길렀지만, 요즘은 동물을 길러(살을 찌워) 돈을 벌기 위해 대단위 농장을 하기 때문에 거의 수입 사료를 먹이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 사료에는 여러 가지 농약과 방부제 따위가 들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 따위 수입 사료를 먹고 자란 동물들이 싼 똥오줌이 얼마나 건강하겠는가? 그 똥오줌으로 농사를 짓는데 어찌 유기농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감히 말한다. 너희들이 유기농을 아느냐?
세상에 똥만큼 정직한 게 없다. 먹은 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 아이들 똥에는 파리도 앉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면 워낙 몸에 해로운 농약과 방부제투성이 음식을 먹고 똥을 누었기 때문이다. 도시 어른들 똥도 마찬가지다. 어찌나 냄새가 독하고 잘 썩지 않아 거름도 안 된다고 한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삼 년 동안 제 똥오줌을 먹지 않으면 병이 든다는 말이 있다. 유기농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제 몸에서 나온 것을 수세식 변소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해서, 그게 거름이 되어 땅을 살리고, 그 땅에서 건강한 먹을거리가 생산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걸 유기농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 땅에 유기농이 있단 말이냐? 만일 있다면 자기 식구 먹을 양식 정도는 생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시장에 내다 팔 정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게마다, 광고마다 유기농이 어쩌고저쩌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이나 지금 짓고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유기농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다 안다. 정부에서 인증하는 무농약 농산물, 저농약 농산물은 어느 정도 생산하지만 유기농은 거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대로 동물에서 나온 똥오줌이 유기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약 친 쌀겨나 밀, 옥수수 따위를 먹고서야 어찌 건강한 똥오줌이 나오겠는가. 병든 땅에서 어찌 건강한 곡식이 자랄 수 있으며 병든 몸에서 어찌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겠는가. 아기 둘 가운데 한 명이 아토피나 알레르기 체질을 안고 태어난다는 말이 들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사람과 자연을 살릴 참된 대안은 내놓지 않고 ‘유기농’이란 말만 늘어놓으면서 돈놀이에 정신이 없으니 어찌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묻는 것이다. 너희들이 ‘유기농’을 아느냐?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하늘에는 산성비가 내리고 땅은 썩어가고 모든 생명이 죽어 가는데, 국가의 정원이고 겨레의 어머니인 우리 농촌이 무너져 내리는데…….
너희들이 밥상을 아느냐?
사기를 쳐서 살거나 빌어먹더라도 도시가 낫다는 동무와 술 한 잔 하면서 하도 가슴이 답답해서 한 마디 했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렇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겠냐?”
“앞집 뒷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고 이웃들과 밥 한 그릇 나누어 먹을 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은, 누가 사기를 쳐서 사는지 알고도 서로 모른 척 하는 거지. 자네도 알다시피 사기 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곳이 도시잖아.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 맨날 하루하루 사는 게 남을 속이고 그럴 듯한 말로 사기치는 일인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라구. 아니면 성직자나 수도자들한테 물어보라구. 도시 사람 가운데 땀 흘려 일하면서 정직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만일 있다면 성인이거나 미친놈이겠지.”
오랜만에 만난 동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는 이 나라, 이 땅에서 농사짓는 농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일까? 더구나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생명농업’(유기농업,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가난한 농부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 정성 들여 농사를 지어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한다고 해서 세상이 밝아질 수 있을까? 누구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단 말인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즐길 수 있고 무엇이든지 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다’ 싶다. 무농약 농산물이나 유기농산물로 생명이 깃든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싶으면, 누구든지 ‘내가 이 밥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첫째, 누가 농사를 지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둘째, 어떤 방법으로 농사를 지었는지 알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농약을 쳤으면 몇 번을 쳤는지, 농약을 치지 않았으면 어떤 방법을 썼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셋째,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지었는지 알아야 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건강한 유기농산물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면 농부는 사람과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돈을 벌기 위해 유기농업을 시작한 농부라면 돈을 벌기 위해 앞으로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짜증스런 얼굴로 밥상을 차리면 모든 음식에 독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기쁜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야만 농산물도 약이 되는 것이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면 어찌 기쁜 마음이 일어날 것이며 얼마나 삶이 힘들고 짜증스럽겠는가.
넷째,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싶은 사람은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애써 준 농부의 집에 식구들이 자주 찾아가야 한다. 찾아가서 함께 일을 하고 삶을 나누어야 한다. 우리 식구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농부를 한 식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사람의 마음’을 떠난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건강한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린다고 해도, 그 밥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농사를 지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오르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밥상을 차린다는 말은 곧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에라, 아무 거나 처먹고 병이 들든지 말든지 나는 모르겠다.”는 말과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다. 21세기에 사는 사람답게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 그것이 우리 농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것이다. 어찌 농촌뿐이겠는가. 농촌이 무너지면 이 땅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 컴퓨터나 자동차를 씹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 농산물이 몸에 좋은 줄 누구나 다 안다. 그리고 우리 농산물 가운데서도 유기농산물이 진짜 몸에 좋은 보약이라는 것도 다 안다. 그러나 “농약과 방부제투성이 싸구려 수입 농산물조차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 농산물을 먹을 수 있단 말이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먹고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백성들은 다른 곳에 지출을 줄이고 우리 농산물을 먹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 농산물을 가난한 사람들한테 조건 없이 선물로 드리자.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라
도시 사람들은 앞집 뒷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 도둑이 살든, 강도가 살든, 밤바다 사람을 토막내는 살인자가 살든, 두부에 염산을 섞어서 파는 사람이 살든, 묵은 쌀을 햅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식용유를 뿌리는 사람이 살든,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농약과 방부제 투성이인 수입쌀을 국산쌀이라고 속여서 팔아먹는 사람이 살든, 일반농산물을 유기농산물이라고 속여서 떼돈을 번 사람이 살든, 당면에 고무가루를 섞어서 만드는 사람이 살든, 짐승도 먹지 않는 쓰레기 같은 음식을 넣어서 만두를 만드는 사장이 살든, 중국산 더덕에 황토를 발라 국산 더덕이라고 속여서 파는 사람이 살든, 제 식구 먹는 음식은 깨끗한 국산 농산물을 먹으면서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은 국산이든 중국산이든 가리지 않고 싸고 양 많이 주는 농산물을 쓰는 식당 주인이 살든…….
도시 사람들은 이런 무서운 사람이 앞집에 사는지 뒷집에 사는지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 대부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도시는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몰라도, 나만 잘 살면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남한테 조금 피해가 가더라도 똥파리처럼 달려든다. 언제나 닫혀 있는 공간이라(더구나 아파트는) 바로 옆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죽었는데도, 죽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모르고 사는 게 도시 사람들이다.
농촌 사람들은 앞집 뒷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면 살아갈 수가 없다. 할미꽃 피는 무덤은 누구네 무덤인지, 마을 들머리 정자나무 가지는 언제 부러졌는지, 언덕 아래 풀만 자란 저 산밭은 누구네 것인지, 잔칫날 돼지 잡을 때 쓰는 긴칼은 누구네 집에 있는지, 누구네 소가 일 잘하고 힘이 센지, 누가 화학비료와 농약을 많이 뿌려대는지, 해마다 고추농사는 누가 가장 잘 짓는지, 만식이 아저씨 이마에 상처는 왜 생겼는지, 가장 말조심해야 할 사람은 누군지, 돈 많으면서 구두쇠 짓을 하는 사람은 누군지, 누구네 자식이 실직을 했는지, 산청댁 할아버지 피우는 담배는 몇 째 아들이 사 준 것인지, 개울에 물이 줄어들면 누구네 논에 물을 대고 있는지, 누구네 똥개가 밤마다 시끄럽게 짖어대는지, 이런 작은 일까지 모르면 살아갈 수 없다.
농촌은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늘 열려 있는 공간이라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도둑질을 하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해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다리 뻗고 잠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디에 몸과 마음을 두고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는다. 사람한테 다가오는 몸과 마음의 병은 사람이 흙을 떠나서 살기 때문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는다.
지금 당장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 후손들의 삶터인 산과 들을, 그리고 논과 밭을 이제 더 이상 짓밟고 파헤쳐 길을 만들지 마라. 러브호텔과 식당 따위를 짓지 마라. 그리고 돈이 있다고 도시에 더 이상 성당과 교회, 절 따위를 지어 사람을 모으지 마라. 고귀한 성직자들(?)을 더 이상 시멘트 건물에 갇혀 자신을 괴롭히며 살게 하지 말고, 제 손으로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 수 있도록 하라. 자신이 태어나서 다시 돌아가야 할 흙을 떠난 사람이 어찌 하느님, 부처님을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겉으로 좋은 말을 한다고 누가 알아듣기나 한단 말인가. 이제 더 이상 입으로 사는 시대는 끝났다. 수천 마디의 좋은 말보다, 수만 권의 좋은 책보다 실천하는 삶이 필요한 시대다.
“길이 어려울수록, 그 길을 택하여 가라. 그리고 세상이 버린 것들을 그대가 취하라. 세상이 하는 일을 따라 하지 말라. 모든 일에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라.
그리하여 그대가 찾는 그 길에 가장 가까이 도달하라.”
약 력
- 서정홍 시인은 제4회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바쁘게 일하면서 글쓰기에도 힘을 기울여 그 동안 동시집《윗몸 일으키기》(현암사),《우리 집 밥상》(창비), 시집《58년 개띠》(보리),《아내에게 미안하다》(실천문학사), 자녀교육이야기《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보리)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한테 농업과 농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우리 농업 이야기》(한솔교육),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봄나무)를 뜻있는 분들과 함께 펴냈습니다. 현재 황매산 산골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자연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 전자우편 : junghong58@hanmail.net
▶ 전화 : 011-9556-8239, 055-933-2513
▶ 삶터 : 678-973 경남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692-1번지 나무실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