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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경기 산하

역시기행 - 다시 보는 京畿山河

by 아름다운비행 2006. 11. 15.

이 글들은 경인일보에서 지난 2002년 3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3년간 경기도의 산하를 직접 답사하며 역사의 흔적과 문화와 숨은 이야기를 찾아본 족적이다.

 

이 대 기획을 마치면서 새로이 발견된 것들도, 보존해야 할 것도

부각되면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할 것이다.

 

아래는 그 첫편으로, 2002. 3. 26일 경인일보에 게재된 글,

"[다시보는 京畿山河] 향토의 맥박·혼을 찾아서".

 

경인일보에서는 全文을 볼수 없고

경인문화재단에서 그 전문을 볼 수 있다.

 

  --> http://www.ggcf.or.kr/data_center/culturalreList.asp?boardkey=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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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 향토의 맥박·혼을 찾아서

 

-고대부터 이어온 나라의 심장-

경기도는 한반도의 요충이다. 아시아 대륙을 향한 우리의 지형, 이것은 마 치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이다. 동물과 인간의 포효는 심장 의 박동이 있음으로써 가능하다. 경기도! 이곳은 한반도의 맥박이 고동치 는 가슴이다. 살아 숨쉬는 5천년 민족사의 박동이 고려의 삼한(三韓) 통합 같은 역사적 교훈을 새기며 21세기의 새 지평 통일 한국의 청사진을 펼치 고 있다. 한반도의 여명을 장식한 경기도의 지형, 이미 이곳은 자연의 태생 적 안식이 가능했던 구석기·신석기·청동기인의 생활 터전이었고, 역사의 시작인 철기·삼한시대에는 마한과 진한의 무대로서 한강·임진강·예성강 을 품었다. 그리고 삼국 정립기 역사의 꽃 백제시대에는 주위를 아우르는 왕도의 땅이 되었으니, 태초 이래로 경기 오악이 하늘을 받친 경기도 땅은 역사와 문화를 잉태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꼭 지켜야만 할 역사의 땅-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을 놓고 치열한 쟁패의 각축을 벌인 것은 웅혼 한 민족사의 일대 장관이었다. 이 시기 대륙을 향한 호랑이의 포효는 절정 을 장식하였다. 한강을 포함한 경기 땅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 지던 역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오늘 뿐 만 아니라 미래에도 민족사의 도도한 흐름은 한강처럼 계속 흐를 것이다.

경기인 왕건의 삼한 통합으로부터 고려 건국 이후 오랜 역사의 궤적에서 단 일 민족의 통일을 유지하며 민족 문화의 동질성을 지켜오기까지, 경기 땅 은 '니체'가 말한 대로 '한반도에 비치는 저 찬란한 태양이여 거기에 고려 의 민족 통합이란 대역사(大役事)가 없었다면 그 빛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 는가'를 되짚어 음미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경기 땅은 민족통일의 지렛대로서 그 생명력을 일깨우는 고난과 시련, 영광 으로 점철된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병자년의 양란을 겪은 혹독한 시련의 땅, 강화도 함락, 광교산 승전, 남한산성의 항전, 삼전도의 수모 등등 역사 는 결코 경기 땅을 외면할 수 없었다.

광복의 기쁨을 비집고 들어온 1950년대의 남북 분단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 한 채 흘러가고 있다. 통일이라는 대전제 아래 맺어진 미국과의 관계는 기 지촌으로 대변될 흔적을 역시 이땅에 남겨놓기도 하였다.

경기 산하에 펼쳐진 역사의 궤적을 추적, 그 곳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 야 하는 것은 역사 발전의 주역인 인간의 삶을, 문화의 역동성과 과거의 흔 적에서 원초적 생명의 근원을 찾는 데 있다. 이는 21세기 디지털 문화의 새 장을 열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고려와 조선의 왕도를 포용하면서 천년의 역사를 이끌어온 이 땅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은, 이 시대가 지향 해야 할 통일의 대역사를 민족의 자존심으로 대변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문화 예술의 마당에서 새로운 기전학(畿甸學)까지 -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의 가교로서 전통 문화의 독창적 토양도 경기도를 벗 어날 수는 없었다. 항몽 40년의 팔만대장경 판각, 불교 유적을 비롯한 문화 재의 보고, 민족사를 이끌어온 사상의 보고는 바로 경기였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려온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의 송악, 감악, 운악, 북 악, 관악 등 경기 5악, 그리고 한강, 임진강, 예성강, 안성천 등의 물길, 서해의 섬들과 서해안의 포구와 개펄 등은 경기 문화 예술의 터전이다. 민 중의 애환을 말해주는 양주별산대, 이천거북놀이, 안성남사당, 평택농악 등 의 뿌리는 자연의 혜택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경기 땅의 풍요가 곧 문화 예술의 모태가 되었다.

고려 말 공민왕의 외세를 배격한 자주 노선과 정몽주의 성리학 정립, 조선 왕조의 유교를 바탕으로 한 수기치인과 민본주의 정치는 500년을 지탱해온 정신적 지주였다. 정도전의 정치적 이상 철학과 율곡 이이의 창업, 수성, 경장, 조광조의 개혁정신, 강화학 등의 바탕은 모두 경기에서 형성되었다. 실학의 근간 또한 경기에서 출발하였거니와 경기 실학자들의 치열한 현실론 은 근세 민본주의의 초석을 다졌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의 굳건한 토대를 구축하는 토양이 되었다. 특히 화성 축조에 경기 실학자 들의 이론이 뒷받침되어 경기 문화, 사상, 경제, 사회 등을 대변하는 백미 적 금자탑이 되게 하였다.

-행정 중심지이자 저항 정신의 표상-

경기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상징하는 이른바 4대 유수부(개성, 강 화, 광주, 수원)는 한국사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4개의 기둥이다. 개성은 고려왕도 500여년의 보금자리였고, 강화도는 항몽 40년의 임시 수도 로서 자존 의식의 표상이었다. 광주 역시 경기 관찰부가 있었던 행정의 중 심지였고, 신라 통일의 중심 무대 한산주의 전략 기지로서 고려와 조선이 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지리의 중요성이 인식되어온 국토의 요충이다. 수 원은 삼남의 요충에 버티고 앉은 화성의 웅자도 그러하거니와 조선 후기 민 족 문화의 요람 그 자체를 보존한 세계문화유산으로서도 그러하다. 더구나 경기 관찰부가 있었던 도시에 이어 1967년 경기도청의 수원 이전이 뜻하는 수부도시의 역사적 맥락도 서울을 에워싼 행정 중심지로서의 경기를 다시 보게 하는 것이다.

서세동점기 외세의 침략을 온몸으로 버틴 병인·신미양요, 운양호사건과 강 화도 조약, 제물포조약 등의 현장을 지켜온 격동의 역사 무대에서 경기인 은 늘 전면에 섰다. 일제 강점기 안성의 3·1운동을 비롯한 경기인의 저 항, 양평 여주 광주 양주 가평 강화 등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난 의병 활동과 의병장들의 목숨을 건 투쟁도 간과할 수 없는 경기인의 표상이다.

-미래 지향적인 첨단 산업-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다시 한 번 대륙을 향한 포효가 기대되는 곳, 산 업 경제 첨단 산업의 보루로 새로운 비약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 또한 이 땅 이다. 지난 60년대 수출지향형의 경제 개발은 독재라는 비판까지 받아가며 경기의 한 축을 이루어왔다. 또한 그 부작용으로 노동쟁의가 끊임없이 일어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더욱 단단해지듯 지난한 과정 을 겪었기에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땅 경기도의 어제와 오늘에서 우리는 내일을 향한 정신적 풍요가 역 사 발전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고 그 정신을 민족 자존 의식으로 승화하여 내일의 진로를 개척하여야 한다. 또 분단의 현장에 두른 휴전선이 경기도 가슴을 압박하고 있지만 경의선 최북단 도라산 역에서 우리는 망향의 한이 아닌 통일의 희망을 노래하여야 한다.

다시 보는 경기 산하! 그 자체가 우리의 역사이고 문화이며 생활이고 정신 세계의 실상이다. 이곳에서 들려오는 못다한 이야기에 경기인의 자화상 그 소중한 원형을 기대해 본다. <강대욱 (경기문화재단 편집위원)>

 

역사기행 - 다시보는 京畿山河/ 그 게재목록  (0) 2006.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