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모습
손미나 - KBS 아나운서, 삶의 깊이를 아는 사람
아름다운비행
2006. 2. 28. 21:50
준비하라,그리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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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안하고 두렵다. 어떠한 삶의 방식이 온전하게 ‘자신의’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정점의
자리에서 훌쩍 떠나 ‘무언가’를 얻었다는 아나운서 손미나. 인생 선배 손미나로서 5년 후를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3개월간 연재될
예정. 그 첫 번째, ‘떠남’의 미학에 대한 잔잔한 손미나식 예찬론.
20대에는 언젠가 나도 서른이 된다는 것이 그리 두려울 수가 없었다. 이제 자신의 꽃다운 시절은 다 갔다며 30대의 문턱에서 몹시도 괴로워하던 선배들을 보면서 나만큼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었건만…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내 스물아홉 살의 겨울, 난 몹시도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했다. 특별히 해 놓은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애인 하나 없이 20대가 저버리다니. 갑자기 내 자신이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지면서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그 핑계 김에 어딘가에 엎어져 남몰래 마구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러 갔던 극장에서는 주인공이 잠옷 바람으로 혼자 술을 마시며 ‘All by Myself’를 부르는 첫 장면에서부터 완전한 감정 이입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나와는 달리, 시종일관 좌충우돌하는 딱한 그녀를 보며 키득키득 웃어대는 ‘젊은 것(?)’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그 문턱을 넘어야 하는 것처럼 외롭고,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는 자신이 안쓰러웠다고나 할까.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나를 품에 꼭 안아주며 ‘난 널 이해해. 힘내!’라는 말이라도 해 주고 싶을 정도였으니. 나의 스물아홉 살 겨울은 그렇게 막연히 두렵고 서글펐으며 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음이 너무나 슬퍼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나이를 먹는 일은, 아니 30대가 된다는 사건은 별 느낌 없이 그냥 벌어지고 말았다. 해가 바뀌는 그날 밤이 지나고 나면 마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낯선 세상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내 30대의 첫날에는,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평소와 같은 아주 평범한 일상만이 내게 찾아왔고, 그렇게 난 30대가 된다는 것이 그다지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30대가 된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꽤 ‘괜찮은’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전에 없던 마음의 여유와 용기가 생겼다. 20대가 끝나간다는 조급함이 10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선물 받은 듯한 넉넉함으로 바뀌었고 ‘내 나이가 몇인데 남의 눈치 보느라 그걸 못하겠어?’라는 식으로 원하는 일을 실천하는 추진력은 배가되었다. 논어에도 서른이면 이립(而立)이라 하였으니, 30대는 그렇게 나만의 인생을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 ‘진정한 내 인생의 출발’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사 입성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해가 바뀌면서 저절로 얻어진 ‘명예로운 30대’가 선사한 마음의 여유와 약간의 용기만으로 ‘장밋빛 인생’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질 리는 만무했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여전히 허전하고 불안하게 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而立’이라는 말의 뜻처럼 진정으로 혼자 서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혹시 나는 거대한 기업의 일원으로 수년간 직장 생활을 한 탓에 커다란 기계의 나사못처럼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게다가 내가 비록 고소영, 심은하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대중의 시선을 받는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서 경력과 인지도를 쌓은 지도 어언 몇 년, 아무리 소신을 갖고 생활하려 해도 행동의 제약도 많고 학창 시절의 나답지 않게 참 소심해진 것이 사실이었다. 스스로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단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다는 어떤 일이 절실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가방을 싸서 혼자만의 여행도 떠나 보았다. 그렇게 난 방송에서부터 각종 사회활동, 인터뷰와 취미생활, 여행, 소개팅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시도와 도전을 거듭했다. 이 공허함과 불안감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그것들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 새롭게 채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임을 깨닫기 전까지 말이다. 돌이켜보면, 허겁지겁 공부하고, 일하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비단 나이를 먹으면서 조급해지는 순간뿐만은 아니었다. 대학 4학년 시절, KBS의 문턱만 넘으면 내 인생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입사 시험과 졸업 준비로 안암동 고대 캠퍼스와 고대 후문 앞 자취방 사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가던 그때도, 직장생활에서 휴일도 없이 주 7일 근무를 하면서도, 난 무조건 앞으로만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무리해서 오래달리기를 하고 나면 멈추고 싶어도 마음과 달리 다리가 풀리는 바람에 몸이 저절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나는 기계적으로 달리기만 하다 30대를 맞았고 그래서 그 다리를 어떻게 멈추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선배들과 인생 상담을 하고, 좋은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책을 읽고,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고 그 답은 아주 가까이, 바로 내 마음속에 있었다. 내 마음의 답은 매우 간단했다. 나는 쉬고 싶었다. 3년간 주 7일 심야 근무로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나는 공부하고 싶었다. 매일같이 내 안에 담겨 있는 것들을 말로 풀어 남에게 보여주는 일을 하느라 난 많이 소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행하고 싶었다. 뻐꾸기 시계처럼 늘 같은 시각에 밝고 상큼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아나운서들에게 ‘여행’이란 늘 갈망과 유혹의 대상이다. 내게는 흔히 말하는 재충전이라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여기에서의 재충전은 20대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를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나의 ‘빛나는 30대’를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기 위해 일단 나를 비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비우는 일’에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잠시 떠나 있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 중요한 시점에 그렇게 일을 다 두고 떠나면 어떻게 하냐고, 돌아왔을 때 그 위치에 다시 서지 못하면 어쩔 거냐고, 시집은 안 갈 거냐고 걱정들을 했지만 그게 두려워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난 영원히 그때의 내가 가진 것들로만 만족하고 지내야 하지 않을까… 난 오히려 그게 두려웠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안정과 최고만을 찾다 더 이상 도전도, 실패도, 변화도 없는 죽은 삶을 살게 될까봐 그게 더 두려웠다. 난 떠나고 싶었다. 춤추고 싶었다. 자유롭게. 내가 가진 것들을 훌훌 털고, 나를 비우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그렇게 내 인생의 젊은 날을 열심히 살아갈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추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떠났다. 스페인에서의 1년은 마치 3년쯤 되는 시간처럼 느리게, 느리게 흘러갔다. 가진 것들을 벗어버리고 낯선 땅에서의 나를 만나니 비로소 진정한 내가 보였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배운 자나 그러지 못한 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모두가 자신이 가진 것에서 행복과 웃음을 찾아내는 사람들과 어울려 10년 웃을 웃음을 웃었다. 질리도록 책과 영화를 읽고 보고, 흥겨우면 춤추고, 슬프면 혹시 내일 방송에 눈 부을까 걱정 않고 펑펑 울었다. 나는 행복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모든 걸 버리고 외국으로 떠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내일이면, 올해가 가면, 혹은 나의 20대가 끝나면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할 듯이 전력 질주하던 나에게는 한 걸음 쉬어가는 일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 준 값진 경험이 바로 그곳에서 운명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떠나고 싶어서… '그냥 그래서 떠났다’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는 참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또 용기만큼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었다.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해 떠났던 나만의 여행은 바로 그때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 나이 마흔이 되면 그때는 정말 떠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딘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당신의 운명도 너무 빨리 달려가지만 않는다면, 한 걸음 쉬어 가는 마음의 여유, 그것을 찾아 나설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손미나 1972년생 KBS 아나운서 1997년 입사, <도전! 골든벨> <주말 9시 뉴스> 등을 진행하던 KBS의 간판 아나운서인 손미나는 커리어의 정점에 선 지난 2004년, 미련 없이 직장을 떠나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 대학과 미국 뉴욕 콜럼비아 대학이 공동으로 개설한 언론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아 올해 귀국했다. 귀국 후 KBS에 복직, <문화지대, 사랑하고 즐겨라> <세상은 넓다> 등의 TV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손미나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도 활동 중이다. |
editor 최유경 photographer 정경자 기자 | 2006.01.04 입력 |
* 출처: 인터넷 중앙일보 JOINS 매거진 홈/연재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