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신년특집 - 58년 개띠>찬밥신세 ‘낀 세대’서 사회의 주류로

아름다운비행 2005. 12. 31. 15:51

재수해서  소위 '77학번'이 된 내가 겪은 것과 같은,

그 당시는 낀 세대인지 쉰 세대인지도 모르고  헤매던 시절들,

지금은 멀리 지나간 아스라한 모습들.

 

그 개띠가 화두가 되는 날이군요. ^^

 

 

 

<2006 신년특집 - 58년 개띠> 찬밥신세 ‘낀 세대’서 사회의 주류로

 2005년 12월 31일 (토) 14:39   문화일보

 

(::고교 평준화 1기··· 6·25전쟁뒤 베이비붐 절정때 출생::) 개띠 하면 누구나 ‘58년 개띠’를 떠올린 다. 왜 58년 개띠일까. 46년 개띠도 있고 70년 개띠도 있으며, 그리고 어떤 띠도 그렇게 뭉뚱그려 부르진 않는다. 그렇다고 ‘4 ·19 세대’나 ‘6·3 세대’, ‘386세대’처럼 무슨 역사성이나 내세울 만한 뭐가 58년 개띠에 있는 것도 아니다. 되레 빡빡머 리에 검은 교복의 꾀죄죄한 얼굴들이 먼저 떠오른다.
왠지 비주류의 냄새가 물씬 난다. 개띠들만 어렵게 그 시절을 지 나오진 않았을 텐데, 왜 그럴까. 거기에는 어떤 사회문화적 코드 가 숨어있을까. 병술년 개띠해인 새해를 맞아 우리 나이로 마흔 아홉,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그들의 삶을 살 펴본다.

◈공유된 경험들 20살 먹은 딸이 자신을 ‘58년 개띠’라고 부른다는 위영란 현대 불교신문 편집국장의 말. “첫 뺑뺑이 세대로 운좋게 서울의 명 문 E여고에 배정됐다. 그런데 시험을 치르고 들어온 선배들은 우 리를 마치 ‘미운오리새끼’처럼 대했다. 선후배 사이에 그어진 간극에서 58년 생의 ‘애매한’ 운명을 감지했다.” 58년 개띠들이 앞 연배와 단절되는 지점이 여기다. 1974년 정부 의 고교평준화 정책에 따라 입시가 아닌 추첨으로 처음 고교에 진학한 경험은 당시 대도시에서 고교를 다닌 58년 개띠들의 공통 된 ‘상처’로 통한다.

그로 인해 선배들로부터 ‘뺑뺑이’라고 백안시 당하고 졸업 후 동문모임에서도 배척됐으며, 스스로는 실력발휘를 못하고 인생길 이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피해의식(?)을 대부분 갖고 있다. 그들 은 또 고교평준화가 당시 대통령 아들의 진학을 위해서라고 예외 없이, 철석같이 믿고 있다.

지난해 판화가 류연복과 함께 ‘58년 개띠 시-판화전’을 가졌던 문학과경계사 이진영(시인) 대표는 “58년 생들은 다른 세대에 비해 사회적으로 기구한 길을 걸었다는 생각들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교육제도의 실험대상’이 됐다는 점”이라고 말 한다.

그는 “중학교는 바로 1년 선배부터, 우리는 고교부터 입시가 없 어지면서, 무언가 스스로의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있 으며, 그 이유는 대통령의 아들 때문이라는 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아들’ 때문이라는 사실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우리나라는 6·25 이후 1955~1961년 사이에 베이비붐을 겪었고 그 절정이 1958년이었다.

58년 개띠인 고려대 현택수(사회학과)교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입시전쟁이란 말이 시작됐고 갖가지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이들 세대에 맞춰 정부의 평준 화 정책이 시행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이렇 게 분석하면서도 현 교수 역시 58년 개띠답게 ‘대통령 아들 설 ’을 아주 부정하진 않는 눈치다.

베이비붐 세대의 절정이었다는 것은 58년 개띠를 규정 짓는 중요 한 요소 중 하나다. 이들이 대학입시를 치른 1977년은 역대 최고 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어디가든 긴 줄을 서고 치열한 경 쟁을 벌여야 했다. 혼령기에 든 80년대에 58년 개띠는 나이 많은 노총각의 상징이었다. 현 교수는 “58년 생은 어딜 가나 개떼?낮?많았다”고 표현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경험이 있다. 58년 개띠 소설가 박상우씨의 기 억이다. “77학번은 1980년 ‘민주화의 봄’과 광주항쟁 당시 대 학 4학년이거나 군대를 가거나 했다. 취업준비로 후배들의 데모 대열에 끼기에는 운신의 폭이 좁았고, 그렇다고 외면만 하기도 어려운 민감한 시기였다.” 위영란 국장 역시 같은 경험이 있다. “그해 봄에 교생실습을 나 갔는데,‘광주에서 참담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를 학생들에게 알 리거나 실습을 거부해야 되지 않느냐’는 문제로 교생들끼리 투 표까지 했고, 결론은 ‘선생님으로서 계속 실습을 한다’는 것이 었다”고 기억했다.

이들의 이같은 스탠스는 후배들로부터 ‘구세대’또는 ‘줏대없 는 선배’로 58년 개띠가 매도(?) 당하는 계기가 됐다. 군대에 있던 이들은 그들대로 사회에서 데모나 하다 온 ‘운동권’으로 눈총을 받았다. 겨우 제대를 해 캠퍼스로 돌아와서는 이미 후배 들이 마르크스·레닌을 읽고 있는 것을 보면서 58년 개띠들은 화 들짝 놀라야 했다.

여기에서 후배 세대와의 단절이 생긴다. 58년생 대부분은 ‘386 코드’에 대해 친근감을 갖지 못한다. 위영란 국장은 “386 후배 들과는 채널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박상우씨도 “앞세대는 분명 우리와 달랐고, 뒷세대 역시 부담이 어서 어디에 흔쾌히 섞이지 못한 게 58년 생이었다”며 “선배들 에겐 ‘뺑뺑이’로, 후배들에겐 ‘줏대없는 선배’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그것이 ‘개’에 대한 우리의 묘한 정서와 맞물려서 ‘58년 개띠’라는 특화된 이름을 달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鎌杉?

이진영 시인은 “58년생은 이후 사회에서도 윗세대에 눌리고, 민 주화 세대인 386에게 받치면서, 어느 주류에도 편입되지 못한 채 존재의 확인을 위해 개처럼 헐떡이며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낀 세대…, 스스로 견고해진 세대 화남출판사(대표 방남수)는 이달 ‘이 시대의 화두, 58 개띠들의 이야기’(가제)란 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방 대표와 함께 역시 58년 개띠인 이승철(시인) 주간은 “시인 소설가를 비롯해 국회 의원 기자 등 사회 각 분야의 중견인 58년 개띠들이 자기분야를 개척해오면서 58년 개띠란 것이 삶과 인생, 사회 생활을 해가는 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58년 개띠로서 우리사회에 던지고 싶은 발언 등을 담을 예정”이라고 했다.

58년 생은 그 독특한 개성으로 인해 동류의식도 강한 편이다. 이 주간은 “잘나가는 공감대가 아니라 회한의 공감대”라면서 “ 문단에서도 개띠 문인 모임이 있어 한 해 두어 차례씩 술자리를 갖지만 술판이 꼭 ‘개판’으로 끝난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한두살 위아래로 터울이 지는 문인들도 아예 스스로 58년 개띠라 며 그 동류에 섞이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쉰을 목전에 둔 58년 생들은 외환위기 때는 직장에서 애매 한 중간 관리자로 정리해고의 공포에서 떨어야 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위영란 국장은 “개띠는 주류가 아니지만 소속감이 없어 오히려 자유로운 면이 있으며 그래서 창의적이고 또 스스로 견고 해진 세대이기도 하다”면서 “조기명퇴를 당하는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개띠는 다른 연배보다 독립적이고 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