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 - 인천 인물

[인천인물100인] 28.'인천학 연구 선구자' 박광성 교수

아름다운비행 2005. 8. 17. 15:30
그림을 클릭하시면 확대크기의
그림을 보실수 있습니다.     

 “1960년대 향토사 수준에 머물던 인천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겠다고 선생님께서 나섰을 때 학계에선 코웃음쳤지요. 당시의 열악한 학계 사정으론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한다고 해도 주목받지 못했을텐데구전으로 전해지는 인천사를 찾아내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남다른 의지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요. 그렇지만 선생은 신념과 뚝심하나로 인천학 연구를 일궈냈습니다.”
 고 박광성(朴廣成·사학자·1925~1995년) 인하대 교수의 제자 강덕우(50·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씨는 인천학 연구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선생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강위원은 “박 선생은 인천 향토사 자료 등을 체계화시켰고, 그것을 인천개항 100년사(1983년)와 인천시사(1993년) 등의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에게 물려준 진정한 인천의 사학자였다”며 “아침에 출근하면 늘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고서적들을 탐독했고 '설'과 '전설' 로만 떠돌던 인천의 역사를 입증하는 작업에 열정을 쏟았다”고 회고했다.

지난 1990년 인천시사를 편찬하기 위해 연구에 몰입한 나머지 중풍으로 두차례나 쓰러졌으나 보란 듯이 일어나 작업을 마친 그의 일화는 지금도 제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제자들은 술이나 한잔 걸쳐야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속 얘기를 털어 놓는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로 박 교수를 기억하고 있다.
박 교수의 고집스런 열정이 인천역사와 통사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 지역 학계와 후학들은 평가하고 있다.

실례로 60년대초엔 '능허대(凌虛臺)'가 백제 초기에 중국과 통교할때 사신들이 배를 띄운 장소로만 알려졌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인천부읍지'와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 각종 문헌을 통찰해 능허대의 명칭과 당시 주변국가의 정치형세, 사신들의 경로·횟수등을 입증해 냈다. 능허대는 중국 동진과 통교를 시작한 백제 근초고왕 27년(372)부터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개로왕 21년(475)까지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할 때 출발했던 나루터로 사용됐다는 사실이 기록을 통해 재조명된 것이다. 또 그는 당시의 백제와 중국 도인의 정치 지형에 대해 자세히 밝혀내는 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능허대는 연수구 옥련동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청량산의 서북방향 바다쪽 구릉 돌출부의 봉우리를 가리킨다는 것도 박 교수 연구 성과다. 이 반도형 구릉 동편으로는 자연적으로 조그만 포구가 형성되고 포구 서북쪽 입구에는 '소둑'이라 불리는 둑이 가로지르고 있어 방파제 구실을 했다는 점도 처음 입증됐다. 그리고 능허대를 통해 중국으로 통교한 사실은 동진에 6회, 송에 12회, 북위에 1회 등 모두 19회에 이른다는 사실이 박교수의 '한국 중세사회와 문화'라는 논문집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밖에 박 교수는 이자겸 시대 7대 동안 인천에서 왕과 왕비가 배출되고 태어났다는 칠대어향(七代御鄕)과 강화도 광성보 맞은편에 위치한 손석항(孫石項·일명 손돌목), 인천개항(仁川開港)과 연안방비책(沿岸防備策), 인천의 조계(租界), 병자난후(丙子亂後)의 강화도방비구축(江華島 防備構築), 점조시(占潮詩) 등 수많은 인천역사를 연구해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이렇게 연구된 각종 논문과 문헌 등은 그가 몸담았던 인하대학교 박물관 등지에 모두 기증돼 있다.

한편 한국사 중에서 민란사(民亂史)를 전공했던 박 교수의 독보적인 연구 업적은 지금도 학계에 명맥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충북 제천 출신의 박 교수는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충주사범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지난 1960년대 인천교육대학 교수로 지역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후 그는 1980년대초에 인하대 사학과로 자리를 옮긴뒤 오직 사학에 몰두한 우리시대의 참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인하대 사학과 윤병석(75) 명예교수는 “박 교수는 수학이 출중해 학자의 풍모가 보였고 교육자로 봉직하는 오랫동안 한국사 연구에만 매달렸다”며 “인천을 비롯한 경기도 지방사와 문화사에 대한 그의 연구는 현 학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박광성교수는?
박광성 교수는 1925년 충북 제원군 백운면에서 태어나 일제말기를 소년기로 보냈지만 일찌감치 교육자의 길을 택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52년 대학을 졸업하고 충주사범학교에서 사학 담당 교사로 10여년 근무하던 끝에 1960년대에 인천교육대학 교수가 됐고 기전문화연구소를 설립, '기전문학연구'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후 1980년대 인하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전임교수로 근무하면서 그곳에서 정년을 맞고 대우교수로 활동했다. 박 교수는 인하대에서 근무하면서 향토사 수준에 머물던 인천사를 체계적으로 재 정립하고 인천역사를 바로잡는데 괄목할 만한 활약과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