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2 (인물,소설 등)

祖母의 전설 - 재중국동포 이민사

아름다운비행 2005. 7. 8. 01:37
재중국동포 韓井居士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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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부의 소설로 읽는 중국조선족 이민사 .


祖母 전설
 
               
               한정거사
 
 
 

 

... 그때 그 우물에서 룡이 나왔다고 나의 할머니는 이야기하셨다.
백세를 바라보는 세기의 로인임에도 우리는 그이를 <<쌍가매(가마)>> 할머니라 불러 버릇 했다.
할머니의 이마전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가마가 자리를 틀고 있었다고 했다.
허나 년세가 든후에는 머리가 많이 빠져 이제 더는 가마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찾아볼수없는 쌍가마의 정체와 마찬가지로 우물에서 룡이 나왔다는 전설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민화나 전설으로 지나 칠 한 대목 이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우물에서 룡이 나왔다고 확신의 어조로 말 하군 했다. 어거지에 가까운 어조였다.
유치원 다니는 증손녀와도 아니고 누구를 보나 그렇게 말 하군 했다.
우리는 그저 로후의 로인의 망녕든 소리쯤으로 치부하고 지나치군 했다.
할머니는 이제는 틀이 끼기조차 힘들어져 체념하고 푹 패인 합죽이로 부대처럼 훌쭉한 볼을 풀럭이면서도 어눌거리는 말씨로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군 하셨다.
모시빛저고리에 검정 몸베를 받쳐입고 어깨가 시려나는지 무명실수건을 마냥 어깨에 걸치고 한쪽 무릎은 세운채 오두마니 앉아서 할머니는 형형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가 즐겨 말하는 그 우물은 현성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었다.
그곳은 고색 창연했던 이 현성에서 하나의 풍경구가 되여있다.
현성에 들리는 사람 치고 그 우물을 찾아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우물주변에는 철책(鐵柵)을 두르었고 우물 아구리는 철판을 대여 커다란 자물쇠를 잠근 데서 사시장철 쌉스름한 물이 자작하게 괴여 있었다는 우물물을 볼수 없었다. 우물아구리에 놓인 용드레틀도 평소에는 보이지않았고 명절이나 유람객들이 운집하는 관광 호황기에만 그 무슨 무대세트처럼 얹었다가는 다시 떼여 내군 했다. 여하튼 그 우물에서 룡이 나왔으며 우리고장의 이름도 그 우물 그 룡을 따서 달았다는데 대해선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전설은 그 우물로부터 시작 되군 했다.
사람끼리 잡아먹었다는 기사년 대기(大飢)의 고개를 넘어 백년전 쌍가매할머니의 아버지는 이곳에 이르렀다.


 


 


눈물 젖은 두만강
 

  봇짐을 풀던 첫날 칠척의 장한은 대동해 왔던 가족들 앞에서 땅을 치며 목울음을 울었다고 했다. 풍문에 이곳은 물고기가 논 코에 욱실거리고 꿩이 가마에 절로 날아들고 뜰에서 몽둥이로 노루를 때려잡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 했다. 허나 그들을 맞아준것은 천만년 묵은 진펄에 갈대 숲이 우거지고 야수가 출몰하는 인적기라고는 없는 고장 이였다. 천재(天災)를 입은 고향의 풍토가 거칠다고는 하지만 이곳 만주 땅에 비할 바가 아니였다.

삼을 굽는 구덩이를 파놓고 길쌈을 잘했으므로 고향에서는 그네들을 삼굽집이라 불렀다. 그들의 고향에는 3년째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있었다. 떡갈나무에 개피를 뿌리며 강우제를 지냈지만 무심한 하늘은 비한방울 내리기에 린색했다. 그리고 집에는 라병환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굶는 서러움에 <<문둥이집>>이라 사람들로부터 오는 소박에 등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리향할 생각을 뼈물러 머금었던 것이다. 떠나면서도 삼을 구워야한다며 쌍가매의 어머니가 삼씨 반 사발을 보짐에 품고 왔다.
그들 일가처럼 수효를 셀수 없는 사람들이 처자를 거느리고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망건에 헌 삿갓, 퇴색된 휘양을 쓰고 무명두루마기를 걸치고 미투리를 신은 사람들...
너나가 다를 바없는 따라지 목숨들 이였다.

함경북도 부령군에서 왔고
갑산군에서 왔고
정성군에서 왔다.
김액 김씨, 전주 이씨, 미량 박씨들이 왔다.
삼굽는 사람도 왔고
총을 든 포수도 왔고
곡하는 사당패출신도 왔고
안경 건 훈장도 왔다.
대짝같은 보퉁이를 지고 남부녀대하고 밤도와 강을 건너 왔다. 둥지 털린 멧새처럼 민들레 홀씨처럼 여기저기서 날아와 이러구러 동네를 이루었다.

향수에 볼을 적시는 눈물을 뻑 문지르고는 이튿날부터 황무지개간에 나섰다.
버들과 갈을 베고 불을 달았다. 그때 실향민들이 놓은 불은 옹근 하루밤 하루낮을 타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개간의 첫 모지락괭이를 박았다.
사력을 다한 그네들의 힘으로 비탈에 밭이 일구어지고 갈대숲 무성하던 사득판에 논이 풀리였다.


그런데 고생중의 고생은 마실 물이 없는것이였다.
리씨성을 가진 훈장 하나가 풍수를 볼줄 아는지라 물 자리를 찾아 나섰다.
풍수를 본즉 이곳은 원체 왕후지지 (王侯之地)도 못비길 명당자리라고 했다. 땅 밑에 룡이 틀고 누워있다는 것이다.
우물자리를 잡고 동네에서는 간소하나만 주과포(酒果脯)를 차려 천지신명에게 제를 지냈다. 그리고나서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모래와 자갈을 들어 내고 돌을 까 내니 샘줄기가 터졌다.
쌍가매의 아버지가 우물맛을 보니 쌉스름하고 이발이 쩡쩡 시려나고 배속을 시원히 찌르는 것이 틀림없는 룡수였다. 물을 마셔본 사람마다가 물맛이 좋다고 절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우물 아구리를 정성스레 쌓고 물을 긷기 좋도록 용드레를 앉혔다. 우물가에 수양버들도 한그루 옮겨다 심었다.
좁장한 마을 안자락에 숨은 듯 주저앉아 있는우물가는 한컷의 흑백수묵화를 방불케했다.
곱게 쌓은 돌가퀴우에
룡드레 틀 하나 얹혀져 있고
우물벽체를 이룬 돌틈사이엔 물이끼가 꽃처럼 피여나고...





우물자리에서 룡수가 터지던날 쌍가매 어머니의 양수도 터져올랐다. 쌍가매는 그날 타향에서 탯줄을 끊었다. 어머니는 탯줄을 노전밑에 가만히 감추었다. 언제든 고향에 돌아가면 그곳에 묻어 주려는 것이였다. 그리고 우물물에 쌍가매를 씻겨 내렸다.
찬물의 세례에 쌍가매는 영악스레 울어댔다.

<<썅놈의 종간나(계집애)가 악바리질하고 울어대네.>>

덧불어난 입을 두고 아버지는 귀찮게 뱉었고 문둥이오빠는 가까이에는 오지 못하고 문 짬으로 갓난 애를 들여다보며 못나게 웃었다.

어른들의 타향살이의 애수가 쌍가매에게 옮았던지 아가는 울보가 되여 종일 울음이 그칠새 없었다. 그때마다 칭얼이는 애를 안고 어머니는 어릴적 배웠다는 노래를 흥얼이군 했다.

월편에 나붓기는 갈잎대가지는
애타는 내 가슴을 불러야 보건만
이 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썩후에야 쌍가매는 한 곡조 밖에 흥얼일줄 모르는 어머니의 그노래가 <<월강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정부는 월강하여 언감 자기들의 봉금지(封禁地)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잡았고 월강죄로 목을 쳤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넌 사람들이 날로 불어만 났고 그네들의 한을 담아 싣고 이 노래는 널리 불리워지고 있었다. 쌍가매의 어머니가 다른 노래는 부를줄 모르고 하여 실향민들의 한이 서렸던 <<월강곡>>은 쌍가매에게서 자장가로 불려 졌다.




(청태조 누르하치,
청정부는 선조가 태여난 장백산 지역을 신성시하여 봉금령을 내렸으며
월강하여 봉금지(封禁地)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잡았고 월강죄로 목을 쳤다.)






(우리의 선조들이 월강하여 맨 처음 이른곳 사이섬)


어느 달이 휘영청 밝은 밤, 고향생각에 잠머리가 뒤숭숭해져 잠에서 깬 쌍가매의 아버지는 문을 나섰다가 그만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글쎄 우물에서 서기가 뿜겨 나오는 것이 아닌가! 사위는 일광단을 펼친 듯 백주처럼 환한데 뒤미처 무지개가 우물우에 비끼고 하늘땅을 뒤흔드는 소리가 나더니 무엇인가 우물속으로 부터 언뜰하고 솟아올랐다. 꿈틀거리며 날아오르는 그것은 틀림없는 룡이아닌가?!

<<룡이다!!! 우물에서 룡이 났소! 우물에서 룡이 났소!>>

아버지가 소리소리질렀고 잠에서 깬 포수네 집에서 사당패네 집에서 훈장네 집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사람들은 다투어 우물을 들여다 보았다.
우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삼굽집 서방의 꿈이 아니면 환각 이였다고 후에 사람들은 말했다.
허나 우물에서 룡이 승천하면 후세에 장수가 나고 이 고장에 행운이 트일 것이라고 동네사람들은 쌍가매아버지의 말을 믿고 룡제를 지냈다. 남에 비해 살림이 조금은 윤택했던 사당패 김씨네가 먼저 자금을 선대하여 이웃 중국동네에 가서 석공을 청해 석비(石碑)를 세웠다. 리훈장이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시에 우물가에서 룡을 보았다고 비문에 써넣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증조할머니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물에서 나온 룡을 자기가 직접 본 것으로 바뀌어져 갔다. 할머니의 확고함에 가까운 어거지 같은것에 의해 룡의 전설은 우리 가문의 전설처럼 만들고 있는것 이였다.

우물가는 애들의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머리칼 떨구지 마라. 침 흘려넣지 마라. 부정탈라.>>

어른네들이 백당부했지만
우물가에는

야청옷을 입고
쥐꼬리만한 머리태를 기른
쌍가매네 또래들이 모여 놀군 했다.






그때 집집마다에 서는 바퀴성화가 극성이였다.
어른들은 롱조로 바퀴장례를 치러주면 바퀴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바퀴장례를 치렀다.
파지로 고깔상모를 만들었고 나무가지로 걸채를 만들었다.
걸채의 앞과 뒤를 포수네 아들과 훈장네 아들이 들고 사당패집 아들은 앞에서 어른들의 본을 내여 아이고데고 호곡소리를 내였다.
그뒤를 쌍가매가 졸졸 묻어 다녔다.
피는 속일수 없는 법, 사당패의 혼줄을 타고 태여났던지 녀석은 어른들의 목돌림을 심통히 받아서 곡조를 제법 잘 넘겼다.

북망산천 어디메뇨
저기 저산 북망일세
내 집이 어디메뇨
무덤이 내집이로구나

그래도 바퀴는 없어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 집 뒤의 수풀속에서는 귀신불이 날아 다녔다.

<귀신불이 아이다. 가둑낭기(나무)나 도토리낭기 썩으면서 그 썩박이 뿌리가 밤이 되면 파란 빛을 뿜는게다.>

얼굴바닥이 계집애들처럼 하얀 훈장네 아들애가 열심히 해석해 주었지만 그 귀신불이 못내 무섭기만 한 쌍가매는 밤중이면 오줌누려도 못나갈 지경이였다.
사당패집 애가 돌배 세 개를 들고나와 누가 귀신불 떠올수 있겠냐고 내기를 걸었다. 얼굴이 구운 밤돌처럼 반질반질한 박포수네 애가 나섰다. 썩박나무가지를 들고와 애들앞에 놓았다. 썩박나무에서 푸른 불들이 눈부시게 끓어 번졌다. 쌍가매는 우악 혼절할듯한 소릴 지르며 집으로 뛰여들어가 버렸다.

겨울이 오면 연놀이를 했다.
사당패집 아들이 한족마을에 가서 백지를 사 가지고 온다.
훈장네 아들이 연을 만든다. 수수대목을 갈라 다듬고 종이를 접어 자르고 어머니의 반짇고리에서 몰래 가져온 무명실로 단단히 걸어 매여 연을 만든다.
포수네 아들은 사금파리 조각들을 주어와서는 김치독 누르는 단단한 몽돌로 사금파리들을 산산이 부순다. 사금파리들은 몽돌에 맞아 사방으로 흩어지며 눈부신 빛을 발한다.
연체에 종이를 바르고 양 옆과 가운데에 꼬리를 단다. 연줄이 견디도록 사금파리 가루를 풀에 섞어 발라서 날을 세운다.
드디여
장방형에 십자살을 붙힌 왕연이 형체를 드러낸다.
가슴이 철렁하도록 맑은 얼음장같은 하늘.
문풍지 소리를 내며 얼레에서 풀리는 은빛 연줄을 타고 연이 오른다.
연은 자유롭게 간도벌의 대공(大空)을 누볐다.






머슴애들은 연싸움에 해가는줄을 몰랐다. 쌍가매가 곁에서 지켜보면 애들은 더구나 신나 한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넌들넌들한 코물을 흡흡 들이마시며 머슴애들은 얼레를 한껏 풀고 활개를 크게 벌려 힘차게 잡아 당긴다.
쌍가매는 해빛에 눈이 부셔 찡긋거리면서도 오래도록 젖힌 목고개가 아파 목을 쩔레 쩔레 흔들면서도 계속 하늘을 쳐다본다. 맞바람을 탄 연은 쌍가매의 머리위 높은곳으로부터 위용을 떨치면서 서서히 다가온다. 머리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기도 한다. 얼레가 감겼다 풀렸다하는 소리속에 연은 곧장 하늘로 날아 올랐다가는 대지를 향하여 독수리처럼 나래를 꺼수수 펴고 내려오다가 땅에 닿기전에 연줄을 풀어주면 다시 연머리는 하늘로 향한다.
연줄과 연줄이 부딪히는 소리가 우물가에 가득하다.
사금파리를 잔뜩 먹인 연줄의 얽힘속에 누군가의 줄 끊긴 연이 팔랑거리다 몸체를 흔들며 떨어져 나간다.
박포수아들의 연이다.
훈장의 아들의 연은 하늘로 우뚝 솟구쳤다가는 백학처럼 멀리 사라져 간다.
사당패집아들의 연은 날고 날아 우물가에 심은 버드나무에 가 걸렸다.
애들이 버드나무를 향해 우르르 몰려 갔다. 연이 갖고 싶은 쌍가매는 맨 앞에서 뛰여 갔다. 박포수네 애가 잽싸게 나무에 올라 연을 내리워 주었다. 가까이 까지 달려온 쌍가매에게 연을 넘겨주다 포수의 아들이 불현듯 쌍가매의 머리결을 함부로 만졌다.

<<쌍가매는 스나(남자)가 둘이래>>

내숭기 많은 훈장네 아들이나 행위가 애매한 사당패집 아들에 비해 박포수의 아들은 그 성미가 숭글숭글했다.
쌍가매는 부끄러운 나머지 연을 받아들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여들어 갔다. 그 서슬에 문 짬에 끼여 연이 찢어져 있었다. 쌍가매는 그저 그 연이 아까울 뿐이였다. 동네 녀자애들중에서 발군(拔群)의 미모를 가진 처녀애로 자라고 있는 그였지만 자신의 농익어가는 몸의 싱그러움과 그 몸이 바라는 꿈과 갈구를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쌍가매였다.




현성에 사숙이 섰다.
공부할수 없는 동포들을 계몽시키기위하여 사숙의 교원들은 마을을 돌며 야학을 열었다.
야학에서는 신문화를 적극 전수했고 어려운 살림들에 도움을 주고저 양잠, 양봉업도 곁들어 배워 주었다.
구학공부 5년에 <<대학>>, <<론어>>를 읽었다는 리훈장이 이곳의 교원직을 맡게 되였다. 물푸레 회초리를 들고 리훈장은 엄하게 아이들을 대했다. 그런 훈장에게 마을사람들은 아이를 시름놓고 맡겼고 가을이면 <<교원쌀>>을 내주군 했다.
작으나마 공터가 있는 우물가가 교실이였다.
리훈장의 열성적인 동원에 마을사람들은 한사람 두사람 야학에 모여 들었다.
옹색한 김서방도 자기집에서 애지중지하던 남포등을 가져와 우물가의 버드나무에 내걸었다.
나중에는 우직한 박포수마저 야학에 나왔고 그 청동방울 흔들어대는것 같은 소리로 훈장에게서 식자본을 따라읽었다.


가을볕과 쓰르라미의 울음소리속에 들판의 곡물들이 빛나게 익어갔고 마을사람들은 사당패집에서 울려나오는 흥겨운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어얼싸 좋구나 농사한철 해보세
어얼싸 좋은데 무슨 농사 해볼가
어얼싸 좋으니 조농사나 해보세
옥토금토 량전에 어떤것을 뿌릴가

만알박이 왕옥조 느실느실 방치조
천리타향 강남콩 오동총백 비단콩
황금보화 황참외 개똥전에 떡참외
어서빨리 박으세 어서빨리 놓으세...



 
 
 


 
 
   <연변문학> 2003년 1월호 발표작품

 
 
 
(2편에 계속) - 내용이 길어 제(옮긴이)가 임의로 내용을 분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