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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 戸田大学――若き日の池田先生が恩師から受けた個人教授

아름다운비행 2020. 1. 3. 10:47

o 출처 : 원문 - Rakuten BLOG  晴ればれと Blog, https://plaza.rakuten.co.jp/anboclub/diary/?ctgy=0  


 * 번역은 kakao i 번역기(베타버전)와 네이버 사전을 사용. 일부 명백하게 오역되거나 어색한 표현 부분만 최대한 원문에 맞게 고쳤음.


新春特集
戸田大学――若き日の池田先生が恩師から受けた個人教授 

신춘 특집

도다대학 - 젊은 날의 이케다 선생이 은사로부터 받은 개인교수 



  (사진 출처 : 세이쿄신문 2020.1.3자 신문)



  「私は今も戸田大学の卒業生として、恩師と心の対話を続けながら戦っています」――池田大作先生は、若き日に第2代会長・戸田城聖先生から万般の学問を学んだ個人教授を、「戸田大学」と呼んだ。本年は、講義の開始から70周年となる。世界に広げた創価の平和・文化・教育の大道も、その礎(いしずえ)は「戸田大学」の薫陶(くんとう)にある。ここでは、その歴史を紹介する。


 「나는 지금도 도다 대학 졸업생으로서 은사와 마음의 대화를 계속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젊은 날에 제2대 회장 도다 죠세이 선생님으로부터 만반의 학문을 배운 개인 교수를,도다대학」이라고 불렀다.  올해는 강의 시작으로부터 70주년이 된다. 세계에 넓혀진 창가의 평화·문화·교육의 큰 길도, 초석(이시즈에,)은 「도다대학」훈도에 있다. 여기서는 역사를 소개한다



“厳冬期”に始動 

"엄동기"에 태동 


  「学」は「光」である。その光が未来を照らし、世界を結ぶ。
 師が弟子に、あらゆる学問を教授した「戸田大学」――それは学会の“厳冬期”に始まった。
 池田先生は、1949年(昭和24年)1月、戸田先生が経営する出版社で働き始めた。その前年から、大世(たいせい)学院(現・東京富士大学)の政経科夜間部に通っていた。
 だが、出版社は暗礁(あんしょう)に乗り上げ、池田先生が編集長を務めた「少年日本」は廃刊。戸田先生は新たに信用組合を設立し、再起を図っていた。師と生涯を共にしようと誓った池田先生もまた、深夜まで奮闘を重ねた。
 50年(同25年)の年頭、戸田先生は言った。「君には、本当にすまないが、夜学は断念してもらえないか」
 池田先生が、22歳となる年の寒風すさぶ日であった。その年の秋ごろから、戸田先生は、日曜日には、池田先生を中心に何人かの代表を自宅に呼んで、御書講義をするようになった。
 不況下で、信用組合は多額の負債をかかえて、8月に業務停止となっていた。その絶体絶命の状況の中で、戸田先生は講義を行ったのである。
 恩師を一身に支え続けた池田先生は、事業の苦境を乗り越えれば、夜学の復学を考えていた。
 年が明けると、戸田先生は語った。
 「ぼくが大学の勉強を、みんな教えるからな。待っていてくれたまえ。学校は、ぼくに任しておけ」


  ‘배움’은 ‘’이다. 빛이 미래를 비추고 세상을 연결한다.
스승이 제자에게 모든 학문을 교수한 도다 대학은 학회의 "엄동기"에 시작됐다.
이케다 선생은 1949년(소화 24년) 1월 도다 선생이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며, 전년부터 다이세이학원( 도쿄 후지대학)의 정경과 야간부에 다녔다.
하지만 출판사는 암초에 올라탔고, 이케다 선생이 편집장을 맡은 「소년 일본」은 폐간했다. 도다 선생은 새로 신용조합을 설립해 재기를 꾀하고 있었다. 스승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다짐한 이케다 선생도 심야까지 분투를 거듭했다.


  1950년(동 25년) 연초에, 도다 선생은 말씀하셨다. "자네는, 정말 미안하지만 야학은 단념 주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케다 선생이 22세가 되는 해의 한풍이 부는 날이었다. 그해 가을 무렵부터 도다 선생은 일요일에는 이케다 선생을 중심으로 몇몇 대표를 집으로 불러서 어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불황 하에서, 신용조합은 과도한 부채를 챙기고 8월에 업무정지 상태에 빠졌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도다선생은 강의를
은사를 몸으로 떠받치는 이케다 선생은 사업의 곤경을 극복하면 야학의 복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해(年)가 밝자 도다 선생이 말했다.
내가 대학 공부를 가르쳐 주겠다. 기다려 주시오. 학교는 내게 맡겨 주게.”


  51年(同26年)2月、戸田先生は、御書講義のほか、古今東西の名著をもとに講義を始めた。さらに、日曜日の講義は、学問百般にわたっての、池田先生に対する個人教授となった。講義は時に、午前も午後も続いた。
 ある講義が修了した時、戸田先生は机の上に飾ってあった一輪の花を取り、池田先生の胸に挿した。
 「この講義を修了した優等生への勲章(くんしょう)だ」
 「本当によくやってくれているな。金時計でも授けたいが、何もない。すまんな……」
 池田先生は、この感動を記している。
 「その花こそ、世界中のいかなるものにも勝る、最高に栄誉ある勲章であると思った。感動を覚えた。自分は最大の幸福者であると感じた」と。
 やがて、戸田先生の講義は、日曜だけでは時間が足りなくなり、52年(同27年)5月8日からは、会社の事務所で、始業前の約1時間、早朝講義が実施されるようになった。他の数人の社員も受講が許された。


  1951년(동 26년) 2월 도다 선생은 강의 외에 동서고금 명저를 바탕으로 강의를 시작했고, 일요일 강의는 학문반에 걸쳐서 이케다 선생에 대한 개인 교수가 되었다. 강의는 때때로 오전이나 오후에도 계속되었다.
강의가 끝나자 도다 선생은 책상 위에 장식한 송이를 들고 이케다 선생의 가슴에 꽂았다.
  "이 강의를 수료한 우등생에게 훈장이다."
  “정말 잘해 주었다. 금시계라도 주고 싶지만 아무 것도 없어. 미안하네.......”
이케다 선생은 감동을 적고 있다.
  “ 꽃이야말로 세계의 어떤 것보다 좋은 최고의 영예로운 훈장이라고 생각했다. 감동을 느꼈다. 나 자신은 최대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윽고 도다 선생의 강의는 일요일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해져 1952년( 27년) 5월 8일부터는 회사 사무실에서 업무개시 1시간, 새벽 강의가 실시되기도 했고, 다른 몇몇 직원들도 수강이 허용됐다.

 
真剣勝負の講義 

최선을 다한 강의 


  午前8時、池田先生を中心に皆で戸田先生を待つ。
 戸田先生が「よー」と姿を現す。
 「おはようございます!」
 元気な声が返ってくる。講義の開始である。
 科目は「経済学」「法学」「化学」「天文学」「日本史」「世界史」「漢文」「政治学」などである。教科によっては、その分野の最新の著作が選ばれた。「君たちは、全部、頭の中に入れておけ」と、メモを取ることは禁じられた。
 ある講義で、化学反応の「化合」がテーマに。
 水は水素と酸素が化合して生成される。その際、水素と酸素の混合気体の燃焼が必要になる。
 戸田先生は「これを信心に譬(たと)えれば……」と言葉を継いだ。
 「我々の信力と行力が御本尊の仏力・法力に照らされ、化合することで、功徳が生じるのである。信力と行力が燃え上がって、化合しなければならない」
 天文学の講義では、『地球と天体』(F・S・テーラー著)の次の箇所に焦点が当てられた。
 「……われわれの望遠鏡の視界のうちには、惑星系を持つ恒星が一千万箇もあると考えてよい。(中略)もし百箇の惑星のうち一箇がこれらの(注=空気、水、温度などの)条件を満足させるならば、生命を維持する能力のある地球が、十万箇もあるかもしれない」
 この一節から、戸田先生は展望を広げて語った。
 「この大宇宙には、地球と同じような惑星が、いくつもある。仏法で説く『他方の国土』とは、そういう所をいうのである」
 御書を根幹に据え、真剣勝負で、あらゆる学問を自在に論じた。
 「この理論には筋が通っていない」「この学者は、一部の原理をもって、すべてに当てはめようとしている」など、鋭い指摘も加わった。
 また、戸田先生は折に触れ、「今、何の本を読んでいるか?」「それでは、読んだ本の粗筋(あらすじ)を言ってみよ」と質問する。時を惜しむかのような恩師の薫陶(くんとう)であった。
 池田先生の日記には、こう決意がつづられている。
 「先生の、身体をいとわず、弟子を育成して下さる恩――吾人(ごじん)は、いかに返さんや。今だ。力、力、力を蓄える時は。あらゆる力を、後代の準備として蓄えん」(53年12月22日)


  오전 8시, 이케다 선생을 중심으로 모두 도다 선생을 기다린다. 도다 선생이 “여~”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힘찬 목소리가 돌아왔다. 강의개시다.


  과목은 '경제학', '법학', '화학', '천문학', '일본사', '세계사', '한문', '정치학' 등이다. 교과에 따라서는 해당 분야의 최신 저작물이 선정됐다.

   “자네들은 모두, 머릿 속에 넣어두어라”라고, 메모를 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강의에서 화학반응의 '화합'이 주제로.
물은 수소와 산소가 화합하여 생성된다. 수소와 산소의 혼합 가스의 연소가 필요하게 된다.
도다 선생은이걸 신심에 비유하......” 하고 말을 계속했다.
  "우리의 신력과 행력이본존의 불력·법력에 비춰져 화합함으로써 공덕이 생기는 것이다. 신력과 행력이 불타오르고 화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천문학 강의에서는지구와 천체』(F.S. 테일러 )의 다음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 망원경의 시야에는 행성계를 가진 항성이 1천만 개나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중략) 만일 개의 행성 개가 이들(주=공기, , 온도 )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생명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 지구가 십만 개나 수 있다.
구절에서 도다 선생은 전망을 넓혀 말했다.
  “이 대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있다.법에서 설하는 ‘타방의 국토’ 그런 곳을 말한다.”


책을 근간에 두고 최선을 다해(진검승부로) 모든 학문을 자유자재로 논했다.
  “이 이론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학자들은 일부의 원리를 갖고 모든 것을 적용시키려고 하고 있다” 날카로운 지적도 함께 했다.

도다 선생은 이따금씩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나?” “그럼 읽은 책의 개요 말해 보라”고 질문한다. 시간을 아끼는 듯한 은사의 훈도였다.


이케다 선생의 일기에는 이렇게 결의가 이어졌다.
  “선생님의, 몸을 사리지 않고 제자를 육성해 주시는 은혜 - 우리들 어떻게 갚을? 지금이다, , , 힘을축할 때는.

   모든 힘을 후대의 준비로 비축한다.” (1953년 12월 22일)


 
識者との語らい

지식인과의 이야기
 「大阪の戦い」「山口開拓指導」など、広布の激戦の中でも、池田先生の人知れぬ研さんは続いた。戸田先生は未来を見つめていた。
 「『一切の法は皆是(みなこ)れ仏法』である。ゆえに、世界のいかなる大学者、大指導者とも、いかなる問題であれ、自由自在に論じられる力を鍛(きた)えておくからな」
 恩師の逝去から約10年後の67年10月、池田先生は、欧州統合の父クーデンホーフ=カレルギー伯爵(はくしゃく)と会見。初の本格的な“西洋文明との対話”に臨んだ。
 伯爵は、28歳で自著『パン・ヨーロッパ』を出版し、ヨーロッパ統合への行動を開始。平和建設に生涯をささげてきた知性である。
 
 二人は70年10月にも会談を重ね、後に対談集『文明・西と東』を発刊。内容は、国際情勢、国連論、国家論、公害問題、民主主義、教育論など多岐に及んだ。中でも世界平和が大きな主題に。池田先生は訴える。
 「共存への機運がいかに高まったとしても、国家間の対立を止揚するものがなければ、第三次大戦は阻止できないかもしれません。この、あらゆる対立を超えさせるものを、人類の精神の中に構築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す」「つまり、地球民族としての普遍的(ふへんてき)な精神を打ち立て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す」
 恩師が提唱した「地球民族主義」を時代精神に――対談の随所に戸田大学での薫陶が躍如(やくじょ)としている。同書は、池田先生が海外の識者と編んだ対談集の第1号となる。
 以来、先生はイギリスの歴史学者トインビー博士をはじめ、世界の知性との対談を続けてきた。先生の著作の海外出版は、48言語2000点に達する。


  "오사카 싸움", "야마구치 개척지도" 등, 광포 격전의 속에서도, 이케다 선생의 남모르는 연구는 계속되었다. 도다 선생은 미래를 보고 있었다.

" '일체 법은 모두 불법'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어떤 대학자, 대지도자라 하더라도, 모두 어떤 문제든 자유자재로 논할 있는 힘을 단련해 두지 않을 수 없다.”
은사 서거 10년 뒤인 1967년 10월, 이케다 선생은 유럽 통합의 아버지 쿠덴호프 칼레르기 백작회견, 본격적인서양 문명과의 대화’에 임했다. 백작은 28세에 자신의 저서 『범유럽 Pan Europe』을 출간하고 유럽 통합에 대한 행동을 시작, 평화 건설에 평생을 바쳐온 지성이다.


  * 참고 : Count Richard von Coudenhove-Kalergi's manifesto Paneuropa (1923)

             Coudenhove-Kalergi was the second son of Heinrich von Coudenhove-Kalergi (1859–1906), an Austro-Hungarian count and diplomat of mixed European origin and Mitsuko Aoyama (1874–1941). His father, who spoke sixteen languages and embraced travel as the only means of prolonging life, yet died in his forties, had prematurely abandoned a career in the Austrian diplomatic service that took him to Athens, Constantinople, Rio de Janeiro and Tokyo, to devote himself to study and writing. 1894.11.16 도쿄에서 출생, 1972.7.27(77세) 오스트리아 Schruns에서 사망.  (글·사진 출처: 위키백과) 

            Graf Richard Nikolaus von Coudenhove-Kalergi (1894–1972) ~1930.jpg


  사람은 1970년 10월에도 회담을 거듭했고, 이후 대담집문명·서와 동』을 발간했다. 내용은 국제정세, 유엔론, 국가론, 공해문제, 민주주의, 교육론 다방면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세계평화가 주제에. 이케다 선생은 호소한다.
  "공존에의 기운이 얼마나 높아졌든 국가 대립을 지양하는 것이 없으면 제3차 대전은 저지할 없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대립을 넘어서는

   것을 인류의 정신 속에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구민족으로서의 보편적 정신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사가 제창지구민족주의」를 시대정신으로대담의 곳곳에 도다대학의 훈도가 뚜렸하게 있다. 이 책은 이케다 선생이 해외의 식자와 엮은 대담집의 제1호가 된다.
이후 선생은 영국 역사학자 토인비 박사를 비롯해 세계지성과의 대담을 이어왔다.선생의 저작 해외출판은 48개 언어 2000점에 달한다.


  * 참고 :  Arnold Joseph Toynbee CH FBA (/ˈtɔɪnbi/; 14 April 1889 – 22 October 1975) was a British historian, a philosopher of history, an author of numerous books and a research professor of international history at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King's College in the University of London. Toynbee in the 1918–1950 period was a leading specialist on international affairs. (글·사진 출처: 위키백과) 


                Arnold J. Toynbee Anefo.jpg


「世界一」の誇り

세계의 자랑거리


 小説『新・人間革命』第19巻「陽光」の章に、池田先生はつづった。
 「戸田大学は世界一の、最高の大学であると確信しています。
 私は、その戸田大学の優等生として、それを世界に証明する義務があると思っています。いや、必ずそうしてみせます。それが弟子の道です」
 これまで池田先生には、世界の大学・学術機関から395もの名誉学術称号が授与されている。その第1号であるモスクワ大学の名誉博士号の授与から、本年で45周年を迎える。
 先生は、戸田大学で学んだことを最大の誇りとし、自身への顕彰を牧口先生、戸田先生にささげてきた。
 世界24カ国からの国家勲章、また数多くの名誉市民称号――それらの栄誉もまた、「戸田大学」が「世界一」であることの証しとなった。


  소설신인간혁명제19권양광』의 장에, 이케다 선생은 수록했다.
  “도다 대학은 세계에 하나 뿐인, 최고의 대학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도다 대학의 우등생으로서 그것을 세계에 증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보겠습니다.

   그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


  지금까지 이케다 선생에게는 세계 대학·학술기관으로부터 395개의 명예학술 칭호가 수여되었다. 제1호인 모스크바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로부터 올해로 45주년을 맞는다.
선생은 도다 대학에서 배운 것을 가장 자랑이라고 하며 자신에게 현창을 마키구치 선생, 도다 선생에게 드려왔다.
세계 24개국의 국가훈장, 그리고 수많은 명예시민칭호들 영예 또한도다 대학」이 「세계1」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2020年1月3日 聖教新聞세이쿄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