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생산기반시설 사용허가 실무편람, 드디어 나왔다.

아름다운비행 2019. 12. 27. 11:44

우리가 농촌 등에서 흔히 보는

저수지, 농업용 수로, 농로, 보(洑, 하천을 가로막아 물을 모아 놓은 시설) 등을

"농업생산기반 시설" 이라 한다.

 

농업생산기반시설 사용허가,

11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업무.

그 긴 역사 속에 통일된 업무편람 하나 없이 해 왔던 업무.

 

 

 

법에 원칙만 선언해 놓곤

나머지는 시설관리자가 알아서 하세요 하고

편람 하나 없이 해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

 

1. 법에서는

시설의 "본래 목적 또는 사용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농업생산기반시설을 본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목적외 사용에 관한 원칙만 선언해 놓고,

 

 2. 시행령에서는

그런 경우 "시설유지관리를 위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할 수 있다고 하여

그 사용료 산출 기준만을 정해 놓은 업무.

 

그 사용료 산출기준은

 1) 시설을 사용하여 수입이 발생하는 경우 그 발생수입의 10/100,

     (신·재생에너지의 경우에는 5/100)

 2) 시설을 사용하여 영농·포획·채취 등을 함으로써 생산물이 발생하는 경우 생산물 시가의 10/100,

 3) 위 2가지 외의 시설부지 사용의 경우 그 토지 개별공시지가의 5/100,

 4) 시설의 용수를 사용하는 경우 시설관리자의 전년도 유지관리 사용경비의 1/600

 5) 경쟁입찰로 사용자를 선정하는 경우 낙찰금액.

 

 3. 나머지 세부 사항은 전부 '시설관리자의 재량'으로 위임해 놓은 업무.

이런 경우를 하기 좋은 말로 '폭 넓은 자유재량'이라고 한다.

 

말이 좋아 '폭 넓은 자유재량'이지,

현장에서 그 업무를 해야 하는 실무자들에겐 미로 속 같은 복잡함.

 

 

문제는,

 1) "시설 본래의 목적"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와

 2)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의 문제. 

 

 

그 판단을 위해서는

 1) 농업토목의 기초지식이 필요해 수리수문학적 기초지식은 필수,

 2) 시설 유지관리를 위한 경험과 그에 관한 시설설계기준 등의 기술적인 기초지식도 필수,

 3) 계약을 해야 하니 민법의 총칙, 계약, 채권 쪽 지식 필수,

 4) 불법적으로 허가 없이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재를 해야 하니 법적조치에 관한 행정심판, 행정소송, 민사소송 등에 관한 기초지식 필수,

 5) 그리고 사용자가 하겠다고 하는 행위가 적법한 것인지에 관하여도 알아야 하니

    국토계획법, 도로법, 토지보상법, 지하수법, 건축법, 수질 관련 법령, 기타 등등 관련 법에 관하여도 알아야 한다.

 

만능박사가 아닌 한 어찌 그 많은 것을 다 알 수 있나?

 

현대 기계공학의 총화는 자동차공학이고

현대과학의 정수는 우주공학이라고 하듯,

농업생산기반시설을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 업무의 총화(總和)라고 해야 할 업무.

 

 그런 업무에 관하여 초보자가 처음 업무에 접해서는 도무지 오리무중, 감을 잡기 어렵고 헤멜 수 밖에 없다.

필요한 타 업무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 없으면 도저히 제대로 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복잡한 분야.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1) 농수로 옆 자투리 부지(남들이 보기엔 자투리 땅으로 보인다)에 콩을 좀 심겠다는데 안된다고 한다.

왜 안되는데?

 

  시설 유지관리를 위해, 농업용수로 옆에는 필요시 유지관리, 준설 등을 위해 한 쪽 옆으로 농로를 붙이게 되어 있다. (농업토목 설계기준에 그렇게 되어 있다)

평상시에는 남들이 보기에 놀리는 땅이지만, 시설유지관리를 위해서는 필요시에 장비가 지나다녀야 하는 통로이고

자재 등을 쌓아 놓을 공간도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농수로 옆 여유부지이다. 결코 놀리는 땅이 아니다.

따라서 농수로 옆 자투리 땅을 쓰자고 하는 경우엔 사용허가를 해 줄 수 없다.

그 땅에 작물을 심으면 긴급한 시설물개보수 등의 경우에 농작물 피해보상을 해줘야 하니까.

 

2) 저수지 제방 아래에 보면 어디나 넓직한 운동장 같은 여유공간이 있다.

거기에 공원을 만들어도 될만한.

지자체에서, 이 자리에 공원을 만들자고 한다. (실제 공원을 조성해 놓은 곳도 있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이 것 역시 사용허가 불가하다.

왜 안되는데?

 

  그 자리 역시 놀리는 공간이 아니다.

시특법(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하는 시설물관리에 관한 법률상 정기적인 안전진단과, 필요시 개보수 등 시설관리를 하는 경우,

그 여유공간에는 자재도 쌓아 놓아야 하고, 공감소 사무실, 자재의 시험을 위한 시험실 설치 등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고,

그런 경우에 대비하여 확보해 놓은 공간이 제방 아래의 여유부지이다.

결코 놀리는 땅이 아니다.

따라서 이 땅도 목적외사용을 허가해 줄 수 없다.

이건 어느 법이나 규정에 나오는 사항도 아니다. 시설유지관리 경험상의 당연한 불허가 사항이다.

 

3) 집이나 공장 등을 짓고 거기에서 나오는 배출수(우,오수)를 농업용수로에 연결하겠다고 목적외사용허가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허가가 불가한 사항이다.

왜 안되는데?

 

  농업용 용수로(물을 대주는 수로는 용수로, 사용하고 난 물을 빼주는 수로는 배수로라고 한다)는

설계할 때부터 저수지 등의 공급용수 외에는 외수유입이 없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용수로단면을 계산한다.

그 설계량 외의 용수가 들어오게 되면 중간에 물이 넘치고 터지는 곳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즉, 수질문제는 두번째로 치더라도, 우선적으로 수로단면을 넓혀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배수로에 오수를 연결하는 것 역시 사용허가해 줄 수 없다.

농업용 수로는 하수용 구거가 아니다. 오수는 별도로 관로 등을 연결해 하수구나 하천으로 끌고가야 한다.

농업용 배수로의 경우, 아래 쪽에서는 그 물을 보 등으로 막아서 다시 퍼서 논에 대주는 용수로의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외부의 우·오수 연결을 허가해 줄 수 없다.

 

  우수관로 연결도 불가하다. 왜?

통상 개발이 되고 나면 주택 등의 바닥을 콘크리트 등으로 포장을 한다.

그러면 비가 왔을 때 물이 한꺼번에 내리몰린다(이런 경우 수문학상 '유달계수'라는 개념이 적용된다).

그 물이 농업용수로에 쏟아져 들어오는 경우, 필연적으로 수로가 넘치고 어느 곳에선가는 둑이 터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빗물에 같이 쓸려들어오는 오염물질은 두번째 친다 해도,

용수로의 단면을 넓혀 일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물도 안전하게 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도 농업용수로에 우수관로 연결 사용허가신청은 불허가 될 수 밖에 없다.

굳이 유달계수라는 개념을 모른다 해도,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 . .

 

이런 모든 일을 모아 놓은 업무가

"농업생산기반시설의 사용허가" 업무이다.

 

그런 업무에 관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한 권의 책자로 펴냈다.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의

「사용허가 마스터 하기」- 농업생산기반시설이나 용수의 사용허가 실무편람 이 그 책이다.

658쪽 분량이다.

 

 

 

 

내가 2010~2017년 8년간을 해 온, 퇴직 전 가장 많은 기간동안 해왔던 업무.

원래 이런 종류의 책자는 본사에서 하는 것이 맞는데,

본사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시간도 안되고, 현장의 실무경험도 부족하다.

사용허가 신청은 지사에서 거의 다 처리하고, 그 중 일부만 지역본부에서 허가처리한다.

본사까지 올라가는 신청건은 없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본사허가를 받는다)

지역본부에 근무를 하며 이 분야 업무의 사내강사로 있던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던 딱 적임자일 수 밖에 없었다.

 

본사에서 못한다고 하던 업무를 옆구리 콕콕 찔러

사용허가 사이버교육 과정을 만들어 2017년부터 전직원 대상으로 강의중이고

그 준비에는 8개월 넘는 기간(4개월 현업과 병행, 4개월은 본업에서 빠져 교육과정 만드는 일에만 전념)이 소요되었다. 

이 과정에는 전직원 대상으로서 기본적인 원칙 등만 수록했다.

 

그 강의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실무자용으로 만드는데 또 7개월.

정년퇴직 후 다른 사정이 있어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사이버교육 과정을 보강하여 근거법령이나 규정, 지침 등의 해당 조문, 설계기준의 해당 부분, 실무사례 등을 보강하여

사용허가 실무편람안으로 하여 현 담당직원에게 넘겨 준 것이 작년(2018년) 11월 초순.

그 원고를 받아들고 검토한다고 바쁜 업무 속에 시간을 쪼개 들여다 봤던 후배들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 1년여의 기간이 이리저리 흐르고 나서 이제야 한 권의 책으로 빛을 보았다.

 

 

1908년 옥구서부수리조합을 효시로 하여 현재의 한국농어촌공사로 오기까지,

내 앞의 수많은 선배들 중 누군가는 이런 시도를 한 분이 없었을까?

분명히 누군가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건 시설관리자 재량인데 그걸 책으로 묶어내면 거기에 묶이는 거 아냐..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실무자가 알아서 하는거지' 하고 흘러온 세월이 110여년.

책자를 내고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그 점이다.

'재량이라고는 하지만 책자에 이렇게 나왔으니 이게 맞는 거 아냐?' 라고 하여 거기에 자기의 책임을 미루는 경우가 생길까 염려되는 점.

 

어쨌든, 이제 그 한 꼭지를 마무리 하였으니 홀가분하다.

원고를 넘겨줄 때, 내 이름은 아예 넣지 않았다.

사이버교육 과정에 실무자 인터뷰 영상이 들어가는데, 거기에도 나는 안 넣었다.

'내년이면 그만두는데 내가 거기 왜 들어가냐'고 한사코 사양하는 선배를 강제로 밀어 넣었다.

나보다 먼저 이 업무를 현 체제로 정착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던 선배니까 강제로 앉혀놓고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

 

원래, 세월따라 사람은 가고 서류만 남는 법.

뒷날, 정영수가 누군지 누가 기억을 해줄 것이며

그게 내게 무슨 의미일 것인가.

다만 이 업무를 가장 오래해 본 경험자였고, 또 그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후배들을 위해 뭔가 하나의 정리물은 남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했던 일.

 

후련하다.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