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스 그 후] '동대문 조폭'과 싸워 이긴 서울시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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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 후]'동대문 조폭'과 싸워 이긴 서울시 공무원들
김봉수 입력 2018.05.20. 11:59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잘못된 불법 행태에 좋은 경종이 될 것이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서울시 소유 동대문 대형쇼핑몰 유어스(U:US) 상가 관련 판결에 대한 윤준병 서울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의 반응이다.
이날 법원은 2016년 9월1일부로 서울시 소유가 된 유어스 상가의 인계를 거부한 채 무단 점거하고 분양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상가관리업체 A대표와 상인 협동조합 B이사장에 대해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검찰 구형(벌금 1500만원)보다 훨씬 무거운 형량이었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다수의 입점 상인들을 볼모로 공동체의 자산으로부터 부당한 사익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점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며 "(서울시가) 거액의 재산적 피해를 입었고 이는 결국 시민들의 피해로 귀착됐다"고 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재판 결과로 유어스 운영권을 둘러 싼 관리업체ㆍ일부 상인들과 서울시와의 법적 다툼이 사실상 시의 판정승으로 매듭지어졌다. 발단은 1993년부터 동부건설이 동대문 인근 서울시 소유 부지에 지하1~6층 규모의 민자 지하 주차장을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동부건설은 이후 적자를 이유로 시에 지상 부분에 쇼핑몰을 증축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동부건설은 2006년 수차례 법정 다툼 끝에 10년 후 기부채납 조건으로 2006년 지상에 5층 규모의 상가 건물을 완공했다. A대표는 이를 임대해 연간 200억원의 임대료를 받아 그중 절반 정도를 챙겨 왔다. 연간 100억원 정도로 치면 1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갈등은 2016년 기부채납 기한(9월1일)이 만료되면서 건물 소유권이 서울시로 넘어오면서 본격화됐다. 시는 공유재산관리법 등에 따라 상가 운영권을 환수해 서울시설관리공단에 맡기고, 점포는 경쟁 입찰로 선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서울 시내 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 상가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그러나 막대한 수익이 아까웠던 A대표는 B이사장과 함께 일부 상인들을 부추겨 1년여간 쇼핑몰을 무단 점거하는 등 '기득권 지키기'에 나섰다. 이들은 "시가 운영권을 갖고 가면 운용 능력이 없어 상권이 다 망할 것", "10년간 가꿔 놓은 상권을 빼앗기게 된다", "공무원들 일자리만 늘려주는 꼴", "중국에 진출한 쇼핑몰 브랜드가 망하게 된다" 등의 대외적인 논리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관련 조례안을 발의한 서울시의원에게 찾아가 "정치를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하는 등 전방위로 서울시를 압박했다.
이들은 지역 국회의원ㆍ시의원 등에게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상인들을 동원해 시설관리공단 직원들에게 욕설과 폭력 등을 휘두르기도 했다. 자체 단속을 위해 서울시와의 협상에 응하는 상인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시 안팎에선 이들의 뒤에 동대문 상권을 장악한 조직폭력배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사사건건 소송을 걸어 서울시와의 사이에 100여건의 민형사상 소송과 고소ㆍ고발이 오갔다. 시가 본 경제적 손해도 1년간 임대료 등 약 117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악성 민원이 발생하면 공무원들의 선택은 대체로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눈치보기'로 일처리를 미루면서 임기를 마치고 떠난다. 두 번째, 민원을 들어 주는 대가로 뒷거래를 통해 금품을 챙긴다. 셋째, 법과 원칙을 무기로 정정당당하게 대응한다. 보통 세번째 길이 옳고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악성 민원을 상대하기가 개인적ㆍ조직적으로 만만치 않다. 시장ㆍ본부장 등 '윗사람'들이 소신껏 뒷받쳐주지 않으면 혼자서만 나쁜 놈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때마침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의 책임자는 소신·원칙주의자로 유명한 윤준병 현 시장 권한대행이었다. 윤 권한대행은 서울시의회ㆍ언론 등 공무원들이 무서워하는 상대라고 할 지라도 원칙에 어긋난 민원ㆍ요구라면 당당히 거부하고 양해를 구하는 소신ㆍ원칙 행정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 최고 책임자인 박원순 시장도 시민운동가ㆍ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법과 원칙, 정의를 중시하는 인사다.
이런 '뒷배'를 등에 업은 서울시 공무원들은 원칙과 법에 의한 행정을 펼쳤다. 상인들과 협상을 통해 1회에 한해 수의 계약을 통해 영업을 더하도록 해주는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상인들을 설득했다. 반면 점유이전금지가처분, 명도소송 등 원칙대로 법적 절차를 차분하게 진행했다. 특히 사익 추구를 위한 불법 행위, 즉 불법 점거와 업무 방해ㆍ공무집행방해 등의 행위에 대해선 고소·고발 등 엄정하게 대응했다.
뜻밖에도 검찰ㆍ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이 걸림돌이었다. 윤 권한대행에 따르면, 경찰은 A대표, B이사장 등이 서울시 간부공무원들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도 시에서 이들을 공무집행방해나 공유재산법 위반으로 고소한 건에 대해선 무혐의로 자체 종결하거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도 공유재산관리법 위반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는 가 하면 업무방해에 대해서도 약식 기소에 그치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시에게 천군만마가 되어 준 것은 결국 법원이었다. 법원은 지난해 5월 A대표 측의 유치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려 소유ㆍ운영권이 서울시에 있다는 점을 확인해줬다. 또 공유재산관리법 위반 혐의 주도자들에 대한 서울시의 재정 신청을 받아 들여 2명에게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해 법정 구속하고 2명에겐 징역 4개월(집행유예1년)을 선고했다. 업무방해 약식 기소자들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해 이번에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사이에 서울시는 2017년 6월 서울시설공단과 동대문주차장 지상상가 관리에 관한 위ㆍ수탁 계약을 맺고 정상화에 들어갔다. 기존 브랜드인 '유어스'도 '디디피 패션몰'로 바꿨다. 시설공단은 지난해 6월부터 상가 활성화를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관리업체와 일부 상인들도 지난해 8~9월 백기 투항하면서 퇴거한 상태다.
윤 권한대행은 이에 대해 지난 17일 SNS에 글을 올려 "앞으로 민자사업으로 건설한 공영주차장들의 무상사용기간이 만료되는 시점들이 다가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인수작업들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수사권의 부당함이 느껴졌었다. 이번 형사판결들은 특정집단들이 사익을 위해 공공재산을 무단 점거하던 잘못된 불법 행태에 좋은 경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