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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명월이의 恨

아름다운비행 2010. 6. 13. 14:56

* 출처 : 조선일보 2010.6.12자 [Why]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11/2010061101461.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5

 

인간성이 말살된,

그런

사실이 여때까지 존재했다는

그 자체가

이해가 안간다.

 

천인공노할 그런 짓을 저지른 자는 죽어 마땅한 놈이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보관되어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다시 태어나선

정말 행복한 생을 사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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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제시대 종로 최고의 명기… 내 미모에 반한 숱한 남자들이내 치마폭에서 놀았는데 어찌된 일인지날 사랑한 남자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그 슬픔 때문이었는지 나도 이른 나이에 그들 따라…
그런데 내 몸 소중한 부분은 베여 포르말린병 속에… 아, 그 치욕의 9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 기생 '명월이'의 생식기 표본이 이달 중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닷컴 6월 2일

# 1918년 그림 속 여인 홍련(紅蓮)

 

1918년 일본 화가 이시이 하쿠테가 그린‘홍련화(紅蓮畵)’. 조선 여인 홍련(紅蓮)이 세모시 치마저고리 차려입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여인은 죽어서 몸 일부분이 표본으로 만들어져 포르말린병에 보관됐다. / 혜문 스님 제공


여인이 무표정하게 허공을 보고 있다. 피부는 맑고 눈망울은 크다. 왼손에 금가락지 세 개, 가슴엔 금노리개를 달고 있다. '홍련화(紅蓮畵)'라는 화제(畵題)가 붙은 이 그림은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 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여인을 그린 화가는 이시이 하쿠테(石井栢亭·1882~1955)다. 이중섭의 스승으로 알려진 이다. 이시이는 1918년 조선에 와 홍련을 만났다. 홍련은 종로 요정 명월관 최고의 명기(名妓)로 이름난 여인이었다.

명월관은 1909년 세종로4거리 일민미술관 자리에 개업했다. 그해 관기(官妓) 제도가 폐지되자 궁내부 관료였던 안순환이 궁중요리사와 예기(藝技) 빼어난 기녀들을 데리고 나가 차렸다.

이시이가 홍련을 곁에 두자 일본 화가와 홍련이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좍 퍼졌다. 짧은 사랑을 나눈 뒤 이시이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해 명월관이 화재로 전소됐다. 명월관은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자리로 옮겨갔다.

매혹된 사람은 이시이만이 아니었다. 저 맑은 미모에 매혹된 숱한 조선과 일본의 남정네들이 명월관에서 홍련을 찾아 사랑을 했다. 기이하게도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홍련 곁에서 복상사한 것이다.

홍련이 30대 나이에 요절하자 경찰이 잦은 복상사의 원인을 찾으려 그녀를 부검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부검 후 그녀의 생식기가 포르말린 속에 보관되고 있다는 소문도 퍼져 나갔다. 그게 지금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지하 냉장보관기에 있다.

#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

언젠가부터 국과수에 '기생 명월이의 생식기'와 '백백교주의 머리' 표본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1960년대 고등학교에 다녔던 사람 중엔 "국과수 견학 가서 명월이 XX 구경했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 사무총장인 스님 혜문은 "차마 있어서는 아니 될 것, 봐서는 아니 될 것을 보고야 말았다"고 했다. 스님은 지난 4월 국과수를 방문해 그 존재를 확인했다.

육중한 차폐문 3개를 지나면 부검실이 나온다. 부검실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다. 냉장보관기다. 문을 열자 그 안쪽 공간에 선반이 있고, 선반 위에 포르말린병이 오롯이 얹혀 있다. 최근까지 병에는 이런 딱지가 붙어 있었다.

'조선 여인의 생식기'. 종로서가 보관하던 물건들이 1955년 당시 내무부 산하에 설립된 치안국 감식과로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옆에 있는 또 다른 포르말린 병에는 조선 사내의 머리를 담아놓았다.

딱지에는 '백백교주의 머리'라고 적혀 있었다. 젊은 여인의 생식기에 이리저리 바느질 자국이 있는 남자의 머리까지. 혜문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혜문은 이렇게 묘사했다.

"…여자 엉덩이를 축구공처럼 도려냈다. 엉덩이부터 앞쪽까지, 성기는 물론 나팔관과 자궁까지 다 있었다. 피부는 여전히 윤기나고 주름 하나 없었다. 그런데 그 도려낸 외곽이 수술용 메스가 아니라 그저 아무 데나 있는 칼로 찢어낸 듯이 너덜너덜했다. 재미로, 장난으로, 히히덕거리면서 기생 성기를 잘라내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도대체 저 표본을 보고서 키득대던 놈은 어떤 놈이었을까? 인간의 마성(魔性)에 분노가 폭발해 올라왔다."

백백교주 이름은 전용해다. "조선에 홍수가 나지만 백백교만 믿으면 산다"고 소리치고 다니다가 신도 620명을 살해하고 1937년 자살했다. 일경은 살인자의 뇌를 보관하고, 뇌가 적출된 머리도 표본으로 만들었다.

국과수 관계자가 혜문에게 말했다. "해부 방식이 연구용은 아닌 것 같다. 절취단면이 깨끗하지 않다. 연구 가치가 있지도 않다. 다만 일제 때 만들어 놓은 자료였기 때문에 폐기되지 않고 전해 내려온 것 같다."

혜문은 올 초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 국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여성생식기 표본 보관중지 청구의 소. "성적 쾌락, 호기심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표본을 즉각 폐기하라"는 내용이었다.

# 만남

혜문은 이시이의 행적을 찾았다. 구전은 구체적이었다. 영화도 나왔다. 2003년 강수연이 주연한 '써클'이다. 홍련과 이시이의 사랑을 주제로 만든 공포 영화다. 환생한 홍련과 이시이, 홍련의 생식기 표본을 두고 스토리가 전개된다.

사람들이 '기생 생식기' 운운하며 죄책감도 의문도 가지지 않고 당연시하는 사이에 혜문은 홍련과 이시이 하쿠테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그게 바로 홍련화 그림이다. 4월 10일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에서 혜문이 홍련을 만났다.

"그는 해가 뉘엿뉘엿 져버리고 잔광(殘光)만 남아 숨 넘어가는 서산마루 같은 어슴푸레한 색깔로 눈에 들어 왔다. 멍하게 풀려 있는 눈빛에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처지를 겪은 자에게서 배어나는 침묵의 쓸쓸함이 담뿍 묻어 나왔다." 혜문이 블로그에 올린 대면 기록이다.

혜문은 "그 순간 그때까지 찾아낸 방증자료들과 직관으로 그녀가 바로 홍련이요, 표본의 주인임을 알았다"고 했다. 1918년 명월관은 일본과 조선의 고관대작들이면 꼭 들르곤 했다. 홍련은 명월관 최고 기생이었다. 최고 기생은 그저 명월이로 통칭되곤 했다.

국과수에 있는 표본 상태를 볼 때 이 주인공은 30대에 사망했다. 명월이, 즉 홍련도 30대에 요절했다. 여기까지는 객관적 방증이고 나머지는 혜문의 직관이다. 혜문은 "그림 속 홍련이 표본 주인이 아니더라도 일본인에 의해 조선 여인이 표본화됐다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했다.

# 해원(解寃)

그달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는 이례적으로 국과수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혜문 스님 일행이 동행했다. 부검실 앞 복도 찬장에 있었던 표본들은 올 초 생식기 표본이 이슈화되자 냉장보관기로 옮겨져 있었다.

재판부도 놀랐고 혜문도 충격을 받았다. 피고인 국과수 관계자들도 우호적이었다. 국과수 서중석 부장은 "비인권적인 표본을 없앨 수 있도록 인도적인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재판부에 부탁했다.

6월 1일 재판부는 "원고는 피고에게 위자료를 요구하지 않고 피고는 표본을 폐기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양측이 수용했다. 백백교주의 머리도 함께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표본은 화장이나 매장 처리된다.

혜문 스님은 "표본을 돌려받으면 홍련화를 영정으로 모시고 천도재를 지내겠다"고 했다. 비운의 여인 명월, 미인도의 주인공 홍련이 마침내 해원(解寃)을 하는 것이다.

 

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

입력 : 2010.06.12 02:56 / 수정 : 2010.06.13 07:24